사랑, 그 이후의 사랑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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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에서 움튼 끌림과 사랑은 점차 더 깊은 애착으로 이어지고, 서로를 향한 진심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감정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을 품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각자가 지닌 고유한 가치관을 통해 서로를 향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실한 사랑을 키워가는 여정에 가깝다. 두 설렘이 맞닿아 정서적, 육체적으로 깊이 빠져드는 순간에는, 그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둘만의 세상이 완성되는 듯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을 알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이 따뜻한 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란다. 그러나 인지할 수 있는 본능과 달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가 찾아오는 호르몬의 작용이 잦아들면, 생각지 못한 시기가 불쑥 다가오기도 한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옅어지다 이내 무감각하게 대할 수 있다. 그리고 식어가는 마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전에 무심히 넘겼던 불만들마저 다시금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시간 속에서 항상 곁에 머무른 연인에게 받은 행복과 안정, 그리고 내가 전했던 마음을 되짚다 보면, 사랑에 대한 분별없는 감정적 의존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진정으로 바라는 사랑의 가치를 다시 마주하게 되고, 그동안 놓치고 있던 따뜻한 감정의 결을 조심스럽게 되살릴 수 있다. 이 과정은 본능의 흐름을 자신의 의지로 조율하려는 섬세한 시도에 가깝다. 연인이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랑에 한 걸음 더 다가서며, 함께 사는 삶을 머릿속에서 현실로 옮기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둘만의 사랑이 담긴 공간을 꾸미며, 더 깊은 행복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의 삶은, 때로 짙은 사랑마저 무색해질 만큼 서로의 본색이 충돌하는 순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이 지치고, 결국 사랑까지 식어갈 수도 있다. 오감이 생생한 현실에서 서로 다른 두 가치관과 성질을 조율해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함께 하는 삶 속에서는, 사랑에 몰입하기에 앞서 각자가 자기 내면에 몰입해야 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부딪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부딪힘이 거듭될수록,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꺾일 수 있기에, 각자가 자기 기세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서로 다른 성질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성인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자주 부딪히는 이유가, 단순히 자기감정만을 앞세운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향한 지나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진심을 확인하는 시간을 거치며 함께하는 행복 속에서도 각자의 행복을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사랑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함께하는 삶 속에서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삶을 관조할 만한 심적 여유를 넓혀가다 보면, 사랑과 삶에 대해서도 한층 더 의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서로 심적으로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사랑도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사랑을 정서적 결핍의 유일한 출구로 여겨 상대의 자아마저 구속해 갈 수도 있고, 육체적인 사랑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서적 성숙이 미진할 수도 있다. 서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몰린 시기가 여러 차례 겹쳐져 심적으로 지친 상황 속에서 본심을 헤아리지 못한 채 결국 이별에 이를 수도 있고, 서로 통하는 부분에만 몰두한 나머지 잦은 다툼 끝에 질척이는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설렘이 강한 시기에 아이가 생겨 감정적인 성숙을 경험하기도 전에 현실에 몰두해야 할 수도 있고, 한 공간에서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이 부닥치며 지금까지 이어온 사랑이 분절되어 갈 수도 있다. 누구나 아름답고 멋진 사랑을 꿈꾸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갈망하는 본능은 잠시 잊을지언정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은 본능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타오르고 이어지는지는 각자가 마음속 깊이 감춰둔 결핍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생긴 결핍은 투명한 사랑의 얼굴 뒤에 숨어 있다가 의지와 무관하게 사랑을 향해 거센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왜곡된 본성을 스스로 충족하거나 억누르는 과정에서 자기만족을 얻고, 그 만족을 사랑이 주는 행복에 투영하며, 자기만의 사랑을 이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마음속 깊이 새겨진 상처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통해 결핍에 대한 만족을 얻었고, 그 만족감을 연소시키며 내 사랑에 불을 붙여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어느 순간 경험적 직감으로 깨달았다. 나는 사랑에 질투하고 소유하려 들었던 시기를 지나왔다. 사랑을 확인하고 의존하던 시기를 지나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바란 사랑에는, 순수한 갈망뿐 아니라 내 결핍을 다독이기 위한 무의식적인 바람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바라는 사랑은, 정서적으로 완전한 신뢰를 향해 나아가는 마음 그 자체를 기쁘게 바라보는 것이다. 부서진 마음 한편에서 쏟아지는 불안과 주위의 시끄러운 기세마저 투명하게 여길 정도의 고결한 마음을 사랑한다.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만의 성숙한 마음으로 나를 마주하는 것뿐이다. 육체적 사랑이 주는 현실적인 기쁨도 분명 소중하지만, 정서적으로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더 이상 내 마음을 크게 흔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마음이 안정된 사랑의 이면에는 사랑을 확인하는 욕구마저 지나치게 검열하는 본성이 자리하고 있다. 연인이 바라는 사랑의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내 사랑을 조절하며 만족과 행복을 얻는다. 나는 자아가 형성된 성인임에도 연인에게 정서적으로 맞춰갈 수 있다고 여기기에, 누군가에게는 위선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불완전한 행태조차 내 존재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내 삶에서 만난 한 가지 사랑이다.


이 사랑은 가장 나은 사랑은 아닐 수 있지만, 내가 가장 바란 안정적인 사랑이다. 물론, 상대는 내심 나와 다른 방식의 사랑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서로의 사랑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지점을 마주하며 둘만의 깊은 신뢰를 나누고 있기에, 이 고유한 사랑의 형태는 나와 연인에게만큼은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제 연인에 대한 질투와 소유, 독점욕마저 고요한 시선으로 관조하며, 연인의 자유로운 삶 그 자체를 사랑한다. 이 감정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할 둘만의 시간과 신뢰 속에서 빚어진 사랑이다. 그래서 나도 타인들의 사랑을 바라볼 때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그 짧고도 진실한 순간들을 더 뜻깊게 여긴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수한 형태의 사랑 속에서 각자가 만족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변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의 형태는 변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심리적 변화를 무시할 수 없고, 긴 세월에 걸쳐 시대와 사회가 주입하는 정서의 기준들도 완전히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상황이 변하고, 주변 사람도 바뀐다.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정서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에 대한 균형도 바뀔 수 있다. 나도 변하고, 연인도 변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사랑은 그 거친 변화마저 고요하게 품는다. 연인의 자존감을 사랑하고, 분노를 사랑한다. 외모와 분위기에 푹 빠졌던 시작이,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지금의 이 사랑으로 이어졌다. 연인 또한 자신의 사랑에 충분히 만족하니 나와 연인은 나름대로 사랑의 결실을 본 것이 아닐까 한다.


2025년 0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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