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하나의 시련이 밀려 들어오면 오랫동안 다듬어 온 만족의 균형에 금이 가고, 나를 향한 위기감이 증폭됨에 따라 감정적 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그동안 몰입해 온 관계를 끝내거나 낯선 환경에 도전하는 등 중대한 갈림길에서 정체성의 방향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는 내 마음에 안정을 주던 삶의 풍경도 바뀐다. 따라서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 강하게 작동해 눈앞의 시련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사라진다. 변하는 현실에 적응하면서도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을 추스르는 데 집중하게 된다. 그 힘든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분명한 이유 없이 더는 힘들게 느껴지지 않거나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닥쳐오는 시련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힘든 순간이 물러가자마자 새롭게 이어질 수도 있고, 한 번에 여러 힘든 순간이 몰려올 수도 있다. 그렇게 나를 쏟아내다 보면, 점점 통제력을 상실하고 관계적 안정이 희미해지는 상황 속에서 나를 잃어갈 수도 있다.
무능하게 느껴지거나 버려진 듯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순간에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회피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시련을 겪을수록 사람은 조금씩 변한다. 나를 긍정하고, 또 부정하는 날들 속에서 마음의 파고를 느끼며, 내가 도달한 현실을 나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금 내 마음이 긍정에 도취해 있든, 절망에 빠져 있든 무관하게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기 전에 지금의 나를 인지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나를, 내가 바라봤던 삶과 목표하는 삶에 비춰보게 된다. 그러고는 내 주변의 반응을 살피거나 짐작하면서 나에게 밀려온 시련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타개하기 위해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내적 정당화를 하게 된다. 결국, 어느 시점에 이르면 눈앞의 현실을 합리적으로 수용하며 이겨내거나, 억울함에 휩싸여 더 깊은 무력함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파고는 살아가는 동안 반복된다. 그리고 그 파고의 익숙함 속에서 내가 감당하고 싶은 나만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나의 가치는 나 또는 사회적 관점에 따라 성장일 수도 있고 정체나 붕괴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분류하든 나의 가치라는 것은 변함없다. 그렇기에 내가 감당하고 싶다고 인정한 나만의 가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면, 내 본성이 바라는 욕구의 우선순위에 맞춰 나에게만 적합한 삶의 태도를 갖춰가게 된다. 내 머릿속에 밀려드는 수많은 생각과 조건은 언제나 본능적인 비교를 불러일으키기에 나만의 태도를 믿고 나아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신뢰하는 주변 이들로부터 받는 영향을 능숙히 조절해 가면, 나에게 알맞은 삶의 궤도에 오르게 된다.
결국, 시련의 끝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현재 누리고 있다고 느낀다면 시련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반대로 가치를 계속 갈망한다면 시련을 겪는 중이고, 도무지 이룰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다면 시련의 시작점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의 내가 어느 지점에 도달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결핍과 충족의 순환 본능에 따라 행복마저 익숙해지는 시간 속에서 내면 깊숙이에 가라앉혀 둔 결핍을 떠올려 스스로 시련을 찾아 나서기도 하기에, 지금 내가 시련의 어떤 과정에 있든 끝내 다시 겪을 과정일 뿐이다. 시련이 밀려오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행복에 안주하려 하면서도 공허를 갈망하고, 결국 아무리 고뇌하고 성취해도 마음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련을 겪을수록 마음의 빈자리가 더 선명해져도, 그 결핍을 자각한다는 사실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에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받아들이며 진실한 나를 표현하는 삶을 산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나에게 만족하면서도 과거를 후회하고, 작은 성취를 이뤄가면서도 미련을 남기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면 살아지는 삶이다. 나는 이렇게 순환하는 삶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내 본성이 만든 삶의 중심이 되는 위로라고 믿는다.
2025년 07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