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세워온 기준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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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로 긋는 선은 나를 드러내면서도 지키기 위한 기준이 된다. 선을 솔직하게 그을수록 불확실성이 주는 매력은 사라지지만, 내 관점을 남기며 나를 돌아보기 위해 지금 그을 수 있는 선을 남긴다.


하는 것이 있다.

긴 삶에서 지금 이 순간까지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뤄봤기에, 나와 연인,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내 곁에, 그리고 내 마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만족한다. 나를 포함한 그들의 자유와 그에 따른 가치관을 존중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집단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있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에 남은 이들을 믿고 싶다. 이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균형 잡힌 정신과 체력을 유지하고 싶다. 나에게 부정적인 의사를 가진 사람이나 상황이 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쳐도 내 마음을 지키고 싶다.


하고 싶지만, 두려운 것이 있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내 의사를 의도대로 전하고 싶지만, 상대의 상황과 어긋나서 왜곡되어 전해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성급히 오해를 풀기보단 말을 아끼게 된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상대와의 관계가 멀어져 허무하게 단절되거나, 내 의도가 계속 부정당해 결국 내가 나를 믿기 어려워질까 봐 두렵다. 그리고 내 삶의 루틴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큰 변화를 맞이해야 할 때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막상 시작하면 적응은 빠르지만, 그 과정까지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퍼져 스스로 납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한, 원초적 본능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부분도 있다. 높은 곳에 오르면 시야가 흐려질 정도의 공포가 밀려올 때가 있다 보니 등산은 딱히 선호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생존, 사유, 자유를 향한 욕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연인이 원치 않는 것은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다 보니 마음에 응어리가 남을 수도 있지만, 한때 본능에 충실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본능을 초월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연인뿐만 아니라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도 상대가 원치 않는 듯하면 표현을 자제하거나 멈춘다. 내 자유가 상대의 마음을 침해하지 않기를 더 바란다. 또한 내가 가진 체력과 시간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에, 연인은 나에게 무엇이든 의존해도 좋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은 정서적 의존까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내 욕구를 충족하는 데 큰 만족에 못지않게 큰 책임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면 하지 않는다. 마음이 흔들릴 정도의 무모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많은 물질적 혜택이나 더 높은 가치를 누리고 싶은 본능도 내 마음의 안정 앞에서는 하찮다.


하지 않는 것이 있다.

타인에 대한 조정, 억압, 압박, 위해, 고립 등 상대의 자유의사에 부정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어릴 때 또래와 다투면서 서로 기분이 상하기도 했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사람 간에 악의를 쏘아대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특정한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에게 악의를 쏟는 행위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기분이 나쁠 때일수록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무질서한 영향력에 나를 내려놓았을 때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충동에 순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욕설도 내 기분이 더 나빠져서 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의 욕설을 받아들일 때는 내가 아끼는 사람의 충동이나 욕설은 귀엽게 느끼고, 내가 부정적으로 인식한 사람의 거친 모습은 더 불쾌하게 느낀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내 기준에 맞는 일이라면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주변의 관심이 긍정적으로 쏠릴 때는 경계하게 된다. 불확실한 영역에서 잠깐의 성과만으로 많은 기대를 받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런 기대를 부를 만한 행동을 피하고,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 이와 비슷하게, 거친 본능에 따른 경쟁이나 무분별한 도파민의 추종도 경계한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하고 싶어지는 것이 있다.

나나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내가 부정적으로 인식한 사람이나 상황에 위협받을 때, 참기 힘든 분노가 치밀 수 있다. 다만 그런 감정을 경험적으로 인지하고 잠식되지 않도록 경계하기에, 화를 내더라도 자신을 잃지는 않는다. 그리고 운전처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일을 할 때는 사실 여러 우연이 잘 맞아떨어져서 안전해 보이는 것일 뿐인데도,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내 기분이 많이 나빠질 수 있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초에 어디에서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대가를 받은 일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 부분이고 정당성이 충분하면, 하기 싫어도 할 수도 있다. 국가의 존속을 위한 징병이나, 자연재해로부터 나에게 필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하는 일처럼,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면 나서고 싶지 않지만 나설 수 있다.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모든 법과 규칙을 따르진 않지만, 사회에 중대한 피해를 막기 위한 법과 도덕은 존중하고 지킨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하고 싶지 않은 것'과 같다.


하게 되는 것이 있다.

나는 심신이 통제 속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다 보니, 스스로 기준을 어겼을 때 그 예외에 대한 정당성을 검토한다. 반면에 내가 이미 예외로 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내 심신을 흔드는 일이 생겨도 괜찮다고 여긴다. 그들이 나에게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등 예측 불가능한 영향을 주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좋지 못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연인이나 내가 아끼는 사람이 연관되었다면 우선 나에게서 문제를 살피고, 내가 부정적으로 인식한 사람이 연관되었다면 그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내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상대의 문제를 철저히 살핀다.


나에게 알맞은 선은 그때그때 내가 그은 선이다. 마음이 달라지면 다시 덧그으면 된다. 무한히 넓어질 수 있는 땅 위에 긋는 선의 굵기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빼곡하게 그은 선을 하나의 굵은 시작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긋고 싶은 만큼 그어가며, 살아 있는 동안 자기만의 기준을 향한 믿음을 키워가면 된다.



2025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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