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퍼가 되었다.

한없이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by 레아


불면으로 처방받던 스틸녹스를 안 먹게 된 지가 몇 달이 지났다. 이젠 신경 안정제만으로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약에 잘 적응을 하고 있어서인지, 안정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여름밤, 약 기운에 나른해진 몸으로 클래식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연애편지에 답장을 쓰는 취미가 생겼다.


아, 잠은 어떻게 오는가.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집어삼키는 게 아닌가. 언제쯤 큰 파도가 와서 나를 삼켜주려나. 얼마나 더 큰 파도가 와야 내가 편하게 잠들 수 있을까. 잠을 기다리는 꼴이 영락없이 사랑에 빠져 너와의 약속을 기다리는 모습과도 같다. 어서 휩쓸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느새 무의식 속에서 헤엄친다.



꿈에서 나는 서퍼가 되었다.

한없이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하지만 보드를 꽉 붙잡고서

저 멀리 주시하고 있는 겁쟁이.



이 바다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이 파도는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잠에 빠지고 사랑에 빠지고 정신없이 허우적거린 바다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잠에 드는 건 파도에 삼켜져 하얀 물결을 내비치기라도 하는데, 사랑에 빠지는 건 바닷속처럼 이리 은밀하고 고요할까.



온다.

- 잠이

- 파도가

- 사랑이


이 밤, 나는 또 파도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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