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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Nov 09. 2023

타히티는 어디 있을까?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읽은 책 : 달과 6펜스

저자 : 서머싯 몸

출판사 : 민음사 (2000)

작성 일시 : 2023년 11월 9일 (목) 오전 11시 30분




타히티는 어디 있을까? 구글 지도를 열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태평양 한가운데 평화로운 작은 섬. 매력 있는 관광지.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이곳을 찾아보게 된 것은 이 책의 주인공 ‘스트릭랜드’ 때문이다. 스트릭랜드의 삶에 대해 좀 더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이유는 그가 “이곳에서 자신을 발견”(248)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발견한 게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뭘까? 그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천재 화가 폴고갱을 모델로 한 인물이기 때문인가?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더 와닿는 사람은 고갱이 아니라 스트릭랜드이다.

스트릭랜드는 40살까지 증권 중개인으로 특징이 없는(37) 인생을 살았다. 어느 날 그는 메모 한 장만 남긴 채 런던 집과 온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주변 사람들은 그것이 여자 문제일 것이라 추측했으나, 그를 찾아 파리로 간 소설의 화자는 그에게서 의외의 답을 듣는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서.” (75) 그의 마음 안에 강렬하고 압도적인 예술혼이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76) 말로는 그것을 표현할 줄 몰랐다. (78) 그래서 그는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 하나만 바라보며 높은 경지로 다가서려 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마음과 태도는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하지 않”아 보일(84) 만큼 무심하고 무책임하고 심지어는 부도덕하게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언젠가 스트릭랜드가 고열에 시달려서 중태에 빠졌을 때(141), 지인인 스트로브라는 화가는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치료하려고 한다. 천재인 그가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것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집에 와서 아내인 블란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며 그녀를 설득한다. 그녀는 스트릭랜드가 너무나도 싫었다. 왠지 그를 집 안에 들이면 끝이 좋지 않을 것만 같았다. (146)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스트릭랜드를 받아들이고 치료해 주다가 결국 그에게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만다. 스트로브는 그 사실을 깨닫고 스트릭랜드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스트릭랜드를 따라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스트로브와는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고. (161) 이때 스트릭랜드는 “그거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162) 나중에 블란치가 그에게 버림받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226) 그랬다고 말한다.




스트릭랜드의 태도는 윤리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미친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다. 얼마나 대단한 그림을 그리길래 인간사 중요한 것들을 다 무시하는가? 막말로 가족 버리고 파리에 와서 남의 여자를 빼앗은 파렴치한이 아닌가?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지 않은가? 죄책감은 없는가? 예술을 추구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볼 자격이 생기는가? (아니 이 자식아, 니가 사람이냐?)

개인적으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윤리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트릭랜드를 욕하며 마음으로 그를 상상하며 쉐도우 복싱을 했다. 나쁜 놈의 시키. 정신 차리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소설 속에서 그는 어떤 방식으로 응징을 받을까? 내 마음은 흥분한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문득 내가 왜 화를 내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스트릭랜드의 비윤리적 태도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가 잘못했으니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던 거다. 나는 스트릭랜드가 부러웠다. 부러워서 화를 내고 있었던 거다.

부럽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 단계에서의 구체적인 부러움의 내용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만 이 지면에서는 “막연한 짐작”(241)으로 남겨두겠다.) 내 초자아는 즉시 나를 비난했다. “너도 미친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었다. 그런 더러운 생각은 집어치우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마음을 파 들어가고 싶었다. 마음탐험가 아닌가? 그 더럽다는 생각을 한 꺼풀 벗기면 무엇이 있는가? 그러자 곧 내 마음이 답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215) 태도. 남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그러면 제 멋대로 구는 방종이나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더 내 마음에게 물었다. 그게 뭐냐고. 그랬더니 떠오른 부분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내가 왜? 그게 왜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에 비웃음을 담고 내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나는 언뜻 본 것이 있었다. 육체와 결부된 존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무엇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고뇌하는 영혼이 그것이었다. 나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추구하는 혼을 언뜻 보았던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내, 남루한 옷차림에 코는 커다랗고 눈은 번쩍이며 수염은 붉고 머리칼은 더부룩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건 겉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육체를 벗어난 하나의 혼과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228)


이 구절이 내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스트릭랜드를 부러워하며 화를 냈던 이유는 그가 나보다 달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달과 6펜스]. 6펜스는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100원짜리 동전 같은 의미라고 해설에 써있다. 달과 6펜스는 둘 다 동그랗다. 하지만 달은 하늘에 있고, 6펜스는 땅에 있다. 이상과 현실을 의미한다. 스트릭랜드는 달을 지향하며 높이 날아가려 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이외의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난에 쪼들리고, 환경이 초라하거나 한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벌어서 물감을 사고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때때로 본능이 그를 사로잡아 무력한 상태가 될 때, 그의 육체는 그를 6펜스의 자리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그 괴리, 모순, 갈등은 고통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날아가는 스트릭랜드를 올려다보면서 부러워했던 것이다. 나도 예전엔 나름대로 예술가로서 달로 날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은 사라진 것 같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아쉬움으로 여전히 남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트릭랜드는 생존을 위해 항구 근처에서 일을 하다가 시비에 휘말렸다. 배를 타고 타히티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영혼의 고향을 발견했다. (281) 타이티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스트릭랜드의 영혼과 어울렸던 것이었다.


마치 육체를 벗어나 머무를 곳을 찾아 방황하던 영혼이 마침내 머나먼 이곳 이국 땅에서 다시 육체의 옷을 걸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진부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는 여기서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248)


그는 타히티에서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타히티의 현지인 여자인 아타와 결혼해 사람들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연과 함께 살며 그림을 그렸던 스트릭랜드. 나중에는 종이를 구할 수 없어서, 그의 집에 벽화로 그림을 남기게 된다. 한센병에 걸려서 죽음을 맞이한 그에게 찾아간 의사는 그 벽화를 바라보며 충격과 경외감을 느낀다.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예술 세계. “천재”(324)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스트릭랜드는 눈이 먼지 1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의 눈을 넓게 열려있었을 테니까. 소설의 화자는 스트릭랜드가 자신의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표현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 모든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고 말한다. (326)




스트릭랜드의 삶을 일반적인 경우로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예술가이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예술가는 아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극단적이고, 특별하다. 그는 천재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부러워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그처럼 될 수는 없다.

날아가던 새는 죽음을 통해 달로 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6펜스의 자리에 있다. 사실 이 자리가 추잡스럽긴 해도, 존재 가치가 없어서 사라져야 할 곳은 아니다. 이곳에는 이곳만의 매력과 의미가 있다. 달을 추구한다고 해서 6펜스의 삶을 경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의 타히티는 어디 있을까?

문득 나는 물었다. 쌩뚱맞은 이 질문은 나에게 한 가지의 힌트를 주었다. 달이 아니라 타히티. 즉, 달이나 6펜스 말고 또 다른 축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타히티든 어디든 나는 내 영혼의 고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도 6펜스의 삶이 이어지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찾고 싶은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가족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려는 것도 아니다. 예술성의 세계로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수많은 달을 포기했고, 6펜스의 자리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여전히 달이 부럽고, 그곳으로 가고 싶긴 하지만 이제는 많이 내려놓았다.

하지만 타히티는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영혼의 고향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어떤 장소인지, 시간인지, 행동인지, 직업인지, 심리상태인지, 탈아적 희열인지, 종교인지, 철학인지. 문학인지, 자유인지, 행복인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아는데 표현을 못하는 건지, 무의식 깊숙이 있어서 올라오질 않는 건지, 아니면 이미 타히티에 와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도 잘 모른다. 그래도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이게 ‘중년의 위기’는 아니라는 거다. 내 인생은 언제나 위기였으니.

스트릭랜드가 타히티를 발견했듯, 나도 나만의 타히티에 도착할 날을 기다려본다. 언젠가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면서 행복과 추억에 빠져들 것을 기대한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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