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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Nov 03. 2023

인간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읽은 책 : 안나 카레니나

저자 : 톨스토이

출판사 : 민음사 (2009)

작성 일시 : 2023년 11월 3일 (금) 새벽 3시




*주의! 결말 스포일러가 있어요!

*주의! 결말 스포일러가 있어요!

*주의! 결말 스포일러가 있어요!


못생긴애들 너무 신기함
예쁜건 어느정도 이상이면 더 예쁜애 찾기 힘들고 거의 비슷비슷한데 못생긴건 한계가 없음 항상 다양하고 더 새롭고 못생긴애가 있어 판타지 속 크리쳐같애 못생긴애들은 자신의 개성과 다양성에 자부심을 가질필요가있어


언젠가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읽었던 유머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이제는 나도 외모에 자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하게 되었다. 정말 설득력 있고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저분 주소 아시는 분 인스타 DM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읽으며 저 유머글이 설득력이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1권 13) 그것은 통계학에서 하나의 법칙으로 인정할 만큼 강력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었던 것이다. 잘 생긴 사람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못 생긴 사람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못생겼다. 참 맞는 말 아닌가? (뭘로 맞는지는 살펴볼 일이지만..) 이것은 통계적인 법칙을 너머 일종의 미학적 원리까지 암시하는 힘 있는 문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을 장식한 진리의 말씀은 민음사 기준 1800페이지의 대장정의 첫걸음일 뿐이다. 톨스토이는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는 어마어마한 소설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 소설에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남편(카레닌)과 금사남(브론스키)이 있고, 레빈과 키티 또한 주연으로 등장한다. 중요한 조연으로 스티바와 돌리의 가정도 있는데, 앞서 언급된 이들과 서로 가족이거나 지인인 관계들로서 이야기를 함께 이끌어 간다. 이외에도 잠시 나왔다 사라지며 작품에 감칠맛을 내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보조 역할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너무 많아서 모든 인물과 관계를 언급하는 것은 힘들다.




안나는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멋진 여성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남편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어느 날 다가온 젊은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끌리고, 점점 그를 사랑하게 되다가 결국 불륜의 관계가 된다. 안나는 사랑을 찾아냈기에 행복했지만, 자기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수치심과 혐오를 경험하게 된다. (1권 326) 경마장에서 브론스키의 말이 죽게 되는 사건으로 인해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을 고백했다. 당연히 남편과의 관계는 깨졌고, 사교계에서는 퇴출되었다. 이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녀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출산할 때 생명이 위독하게 된다. 그때 남편은 그녀와 브론스키를 ‘원수를 사랑하는’ 심정으로 용서하게 된다. 안나는 죽지 않고 회복되었다. 그러자 안나는 남편의 용서를 감당할 수 없고, 그저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찾아 외국으로 도망간다. 안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브론스키에게서 나은 자녀가 카레닌의 이름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녀의 요청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나는 하염없이 기다리다 메말라 가기 시작한다. 아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어서 몰래 찾아가기도 했지만, 그를 데려올 수 없기에 괴로워한다. 

그녀는 그녀의 깊은 불안을 외면하고 감추기 위해 분주하게 이런저런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브론스키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며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사랑만이 전부였고, 그것에 인생을 걸었기 때문에 그녀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브론스키를 들볶는다. 그러다 그녀는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랑이 전부였는데,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남은 단 한 가지의 선택이었다.


이것이 안나의 서사를 아주 거칠게 요약한 것이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 한 여자가 극단적으로 내몰리는 모습과 감정묘사가 무척 애처롭게 다가왔다. 그녀의 사랑은 불륜이었다. 그것은 윤리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모순적인 것은 많은 사람들도 불륜을 저지르지만 안나 만큼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지만 않으면 불륜이 용납되는 사교계의 현실. 톨스토이는 그 점을 풍자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비록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펼칠 수 있었던 사교계에서 퇴출당하고, 곁에는 변변치 않은 사람들만 남았지만, 그녀는 사랑 하나만을 붙잡으며 삶의 의지를 불태워갔다. 그런 안나의 모습은 투쟁과도 같아서, 거기에서 생명력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극단적인 마지막을 선택한다. 그녀의 불안한 마음이 극에 달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브론스키가 사회생활을 위해 외출이 잦고, 집에 늦게 들어오고 연락도 잘 되지 않자 그녀는 그의 사랑이 식었음을 ‘감지’한다. 그러나 브론스키는 ‘남자의 자유’를 추구했을 뿐, 안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던 것은 아니었다. 둘 사이의 감정의 골은 끝끝내 봉합되지 못한다. 안나는 끝없이 의심하게 되었고, 그래서 끝없이 싸우게 되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지옥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점점 닫게 만들었던 것이다. 안나는 사랑이 끝났으므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을 브론스키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불륜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지만 그녀의 심리에 몰입하며 따라가다 보면 ‘내로남불’의 원리에 따라 그녀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그녀의 모습을 좋아하며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며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랑을 잃은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괴로움은 죽음으로 끝나버린다고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다른 사람은 무슨 잘못인가? 남편과 브론스키와 아들이 평생 가질 트라우마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그녀의 죽음은 찝찝함을 남긴다.




한편,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죽음이 등장하는데, 바로 레빈의 형인 니콜라이의 죽음이다. 병이 심해 죽음을 앞둔 그의 곁을 레빈과 키티가 지킨다. 키티가 열심히 그를 간호하지만 차도는 보이지 않는다. 죽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결국에는 ‘저 환자가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말 못 할 마음까지 모두가 갖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이런 괴리, 즉 고통 속에 죽음을 경험하는 자와 주변에서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자들의 마음의 차이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누구를 욕할 것 없다. 죽음은 사람이 쉽게 감당하거나 그럭저럭 이겨낼 수는 없는 강력한 존재이다. 언제나 낯설고,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톨스토이는 전체 소설 중에서 유독 이 부분(5부 20장)에만 ‘죽음’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그가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이라는 뜻이 아닐까? 이 소설은 가정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지만 단순히 가정 생활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이라는 장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니콜라이를 간호하는 키티의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있었다는 것. 즉 인생에는 고통과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언제나 삶과 죽음은 그렇게 교차하고 있고, 우리네 삶 속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영향을 끼치며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 아이러니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은 그런 인생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터전이 된다는 것이다.




불륜으로 복잡한 안나의 가정과는 달리 알콩달콩 사랑하며 잘 지내는 레빈과 키티의 가정 이야기를 무척 응원하며 지켜보았다. 등신(?) 같은(친근한 표현) 레빈은 좀 어리숙한 면이 있지만 진국 같은 사람이다. 그는 지주로서 농민들에게 일을 시키는 위치에 있지만, 때로는 자신이 직접 풀을 베러 가기도 할 만큼 소탈한 사람이다. 농민들은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멀리서도 찾아온다. 그는 그들을 돕고, 따듯하게 말해준다. 때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으로나 사교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로부터 괴짜라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농업과 노동자들에 대한 책을 쓸 만큼 그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레빈에게 자신을 투영한 것 같다. 2권 초반에 풀 베는 장면은 아주 묘사가 잘 되어 있다.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가 풀베기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잘 알 수 있을까? 경험해 보았던 것이다. 그는 농민들을 사랑했고, 농민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그들을 교육하며, 그들과 함께 일을 해나가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작중 레빈은 농민들이 때로는 농기계를 쓰지 않기 위해 기계를 고장내고, 일을 시키는 대로 처리하지 않는 등 어리석은 모습등을 보이고, 자신들의 고집을 굽히지 않아서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런 민중들에게서 어떤 희망을 본다. 민중들의 단순함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빈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무신론이 어떤 농부의 믿음에 대한 말 한마디에 불식되기 시작하는 경험을 한다. 이 모든 것은 톨스토이 자신의 내적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키티도 어린 숙녀에서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점점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볼 때, 안나의 고통에 대비되어 키티의 행복이 더욱 두드러져 보일 때도 있다. 아마 톨스토이가 자신을 레빈에게 투영한 것처럼,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을 키티에게 투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분량이 많기 때문에 부분 부분 인상 깊은 것들이 많다. 잉태되지도 않은 아이의 불행에 대해서 미안해하는 아이러니(3권 186)라든지, 사상과 삶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스비야슈스키(2권 196)의 모습이라든지, 브론스키가 어떤 왕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분 나빠하는 부분이라든지(2권 254), 예술적 딜레탕트에 대한 비판(2권 492)이라든지, 안나와 주변인들의 마음을 예민하게 캐치해 내는 돌리의 초능력(?)(3권 179)이 눈길을 끌었다. 큰 이야기의 뼈대를 채워주는 살과 같은 이런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내 마음을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떻게 들여다봤는지 쓰면 글이 한없이 길어지고, 궁금한 사람도 없을 테니 생략하자.)


그 외에도 정치적인 이야기나, 도요새를 사냥하는 이야기, 손님들과 함께 토론하며 이야기하는 모습들, 사교계의 무도회 같은 장면들 등 탁월한 내용들이 많고, 할 이야기는 넘쳐난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들을 그런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뭔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 딱히 없었다. 이 글을 보는 분이 스스로 읽어보는 편이 낫겠다.


1800페이지의 분량을 단숨에 읽어가기는 힘들었다. 1권과 2권 사이에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흐름이 끊어져서 2권을 시작하기가 힘들었는데, 이러다간 영원히 못 읽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읽어냈다. 이렇게 긴 장편을 집중해서 읽기는 쉽지 않다. 여러모로 힘든 도전이다. 그래도 벽돌 깨기는 언제나 성취감을 주는 법이다. 이제 나는 "[안나 카레니나] 읽은 사람" 타이틀을 획득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내년 초에는 박경리의 [토지]를 도전하려고 한다. 물론 읽어나가기 급급하겠지만 인생에서 지금과 같은 시기가 아니면 이런 벽돌 깨기가 가능한 때가 없을 것이다. 다 늙어서 책 읽기는 힘들지 않을까? 독서도 노동이니까. 이런저런 책들 읽으려면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집어 들기는 어려울 듯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죄와 벌]처럼 인생책이다 싶을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기 때문에 아마 이 책을 다시 읽으려면 몇 배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 책에 손을 흔들며, 떠나보내려 한다.

아쉬운 마음은 털어버리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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