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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May 31. 2024

생각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글쓰기 모임 무사 오픈 기원 글 #13

글을 거의 다 썼는데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면, 그때까지 쓴 내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싹 지우고 깔끔하게 처음부터 쓰기는 아깝다. 그렇다고 내용을 그대로 살리려니 글의 논리가 산으로 간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썼던 내용을 요약한 후에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덧붙이기로.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시도의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원글의 제목은 “애매함과 기준”이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애매한 것이 불안해서 자꾸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 싶어 한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날 탄천을 끝까지 걸어서 한강에 도착했다. 문득 그런 의문이 생겼다. ‘어디까지가 탄천이고, 어디서부터가 한강일까?’ 이런저런 기준을 생각해 보았지만, 애매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하려고 시계를 보았다. 문득 ‘현재’라는 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궁금해졌다. 현재는 시간의 한 지점을 지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시간을 무한히 쪼개 들어가도 정확한 지점을 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애매했다.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또 다른 예가 있다. 내가 운영하는 고전 독서모임이 있는데, 누군가 20세기 후반의 책을 읽어왔다. 그 책은 ‘고전’일까? 고전 여부는 언제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일까? 대답하기 애매하다. 또 글쓰기 모임인 모라도 클럽의 취지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뭐라도 써보자’는 말이 사람들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자칫 무책임하고 기준 없는 말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모든 것에 기준을 세울 수는 없다. 때로는 애매한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할 때는 애매함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는 태도가 기준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오전 내내 썼다. 글을 쓰며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된 만족스러운 글이었다. 하지만 업로드를 하려는데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았다. ‘뭘까? 뭔가 더 써야 할 게 있을까?’ 애꿎은 표현들을 고치며 글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부력을 받은 것처럼 일련의 생각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글을 다 뒤집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실패가 무서웠던 거다. 내가 통제를 못할 것 같으니까 두려웠던 거다. 내가 원하는 모임을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으니까 답답했던 거다. 아, 그러니까 나는 속으로는 겁을 엄청 먹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뭐라도 써보자!”하며 쿨한 척을 하고 있었다. 자기는 용기를 못 내면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다가와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누가 어떤 모습으로 오든 다 환영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만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거다.’


본심이 드러나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글을 업로드하지 않고, 기다리기를 참 잘한 것 같다. 한 단계 더 들어간 마음속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생각이 달라졌기에 써놓은 글을 그대로 올리기 싫어졌다. 현재의 진심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더 기뻤던 건 본심을 알게 되면서 모임에 대한 불안도 싹 사라졌다는 거다. 불안이 없어지고 생각해 보니 모임은 그럭저럭 잘 열릴 것 같다. 만약 잘 열리지 못해도 괜찮다. 이렇게 되니까 “글쓰기 모임 무사 오픈 기원” 시리즈도 그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다. 기원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오늘부로 시리즈는 막을 내리게 될 것 같다.


글에 마침표를 찍기 전에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위의 글에서 내가 ‘애매함’을 불안해한다고 했는데, 가만히 보니 모임을 여는 내 태도가 더 애매했던 것 같다. 자기도 애매하면서 세상이 애매하지 않기를 바라다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탓할 곳을 찾기보다는 내가 좀 더 확실한 태도를 갖겠다 결심해 본다. 세상도 나에게 더 확실하게 다가오기를 바라면서.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https://linktr.ee/inner._.expl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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