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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21. 2024

남편으로 살아남기

흰 모자, 긴 생머리, 가벼운 상의에 레깅스, 올려 신은 긴 양말. 아무리 봐도 러닝을 하러 나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여자분의 흰색 슬리퍼를 보았을 때 웃음이 나왔던 건 그 때문이었다.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선입견이 뒤틀려서 웃음이 나온 것일 뿐, 패션 지적질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가끔 내 복장을 보면 복장 터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의 웃음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꾹 참았다가 아내에게 달려가서 신나게 이야기를 풀었다. 아내는 말했다. “다른 여자 몸이나 보고 있었구나?”


그 순간 내 두뇌 회전 속도는 최고치를 경신하려는 듯 빠르게 치솟았다. 그 말은 여러 층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질투, 경고, 관심 유도, 불만 표현, 테스트, 그리고 유머. 사실 여자의 마음은 마리아나 해구와 같이 깊어서 그 속을 완벽하게 파악해 낼 수는 없다. 여자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나는 남자 아닌가? 우선은 이만큼이라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내가 아는 것으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데 집중해야 했다.


예전에 내가 했던 가장 초보적인 실수는 곧장 확정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미안해”, “사랑해”, “아니, 그게 아니고.” 등등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성적인 의도를 한치도 품지 않았는데, 왜 나를 매도하는 거야? 그런 오해를 하게 해서 미안해. 네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는 건 인정해.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여자가 아니라 너야. 나는 그저 너와 함께 웃으며 일상의 시시콜콜함을 공유하고 싶었어.’ 이런 진심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면 아내의 마음도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미안해”라고 사과하면, 아내를 ‘웃자고 한 이야기에 질투나 하는 속 좁은 여자’로 확정 짓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미안한 기색 하나도 없이 ‘뭐 어쩌라고?’와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아내는 활화산처럼 불타오를 것이다. 그러니 비언어적 요소들, 즉 눈빛이나 표정, 자세 등에서 미안하다는 뉘앙스를 풍겨주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이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영원한 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그 영겁의 시간까지 내 마음은 너에게만 향해 있다는 걸 알아줘.’라는 다소 과장된 마음을 갖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잠시 입은 다문다. 이때 너무 비굴하거나, 어쩔 줄 몰라하는 태도를 보여서도 안된다. 아내가 원하는 건 나의 사랑이지, 나의 패배가 아니니까. 그러면 아내가 내 개수작을 알아차리더라도 많은 경우 그냥 넘어가준다.


여자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고르고 확정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말들이 튕겨나가기 마련이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객관적으로야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도, 감정적으로는 “웃기지 마.”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 그게 아니고.”라며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변명을 해야 할 상황도 있겠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아니다. 내 얼굴이 차은우가 아닌 이상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섣부른 나의 반응이 불필요한 감정을 일으켜 낼 수 있다. 어두운 표정으로 눈을 살짝 아래쪽으로 향하고 심각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내가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예민하고도 섬세하게 레이더를 가동하고 있는다. 그러다가 길이 보이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것이 그동안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지혜이다.


다행히 아내는 천사 같은 사람이다. 내 마음을 쥐어 잡고 흔들어대지는 않는다. 나는 공기 중에 가장 많이 분포해 있는 ‘농담’이라는 성분으로 분위기를 최종적으로 덮으려 시도했다. 결국 서로 피식 웃음을 교환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주섬주섬 재활용 쓰레기를 챙겼다. 현관을 나서며 “편의점에서 포카리스웨트 사 올까?”하고 질문을 던졌다. 아내는 그 음료를 좋아하니까 아마 수많은 감정이 표면으로 떠오르기도 전에 불식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살아있다.


물론, 매번 이런 식의 태극권이 먹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아내의 마음의 반의 반도 모르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때로는 서로 감정이 폭발할 때도 있고, 섭섭한 마음이 오래 지속되는 때도 있다. 그래도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분명한 건 다른 여자 몸이나 보고 있는 순간도 있겠지만, 아내의 몸을 유심히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남편은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복장 터지는 남편은 아니고 싶다. 태극권의 대가가 되어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알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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