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의 첫 난관, 아이와의 대화
육아휴직 초반 21개월이 된 딸아이는 “엄마”, “물”, 그리고 알 수 없는 의성어 일부를 겨우 말하는 수준이었다. 아이와 대화가 잘 될거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휴직라이프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대화는 일방적이었고 아이는 서툴고 낯선 아빠에게 쉽게 마음을열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내가 아이에게 종알종알 말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복직하던 아내가 “오빠랑 밤톨이랑 빨리 애착이 좀 생겨야 편할텐데"라고 얘기해준 부분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애착(감정적인 유대감) 자체가 없으니 잘 다가와주지도 않고, 일방적인 대화를 펼쳐봐도 전혀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했다. ‘서로 소통이 안되니까 이렇게 답답하구나’ 라고 느끼던 중 아이가 내가 말한 단어를 어설프게 따라할 때마다 기쁨의 물개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대화의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어린이집을 다녀온 아이와 카페에서 ‘데이트’를 자주 하였다. 사실 뭘 해야할지 몰라서 그랬다. 하지만 거기서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 캐릭터, 스티커, 과자종류, 동요가 무엇인지하나씩 알게 됐다. 매일 동네 주변을 탐색해보고, 잠시 머물던 카페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만큼 아이와 애착도 서서히 쌓여갔다.
딸은 색깔(특히 무지개색)에 관심이 많았다. 난 색깔과 관련한 유아용 책을 여러 권 사들였다. 딸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책을 보며 색깔을 맞추고 좋아하는 색깔을 영어로 알려주면 영어단어를 외우기도 했다.여러 색깔 풍선을 불어 주고 받기도 하고, 거실 곳곳에 배치하여 이쁘게 꾸며보면서 아이와 함께 웃는 빈도가 많아지며 눈빛으로도 대화를 하게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딸의 유별한 ‘스마트폰 사랑’이었다. 자주 여행이나 마실을 가던 우리가족은 장시간 외출할 때면 떼쓰는 딸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주며 달래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스마트폰 없이 노는 걸 힘들어했고, 스마트폰을 뺐으면 아이는 드러누워 울어댔다.
아이와 대화가 늘 어렵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에 의존한 내 자신이 싫어졌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난 딸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기로 했다. 예상대로 아이는 ‘금단증상(?)’ 때문인지 떼쓰기가 더 심해졌다. 단순히 폰을 주지 않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아이가 있을 때에는 나도 스마트폰을 최대한 보지 않기로 하고, 대신 아이가 폰을 찾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놀이를 함께 했다.
그 시작이 바로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놀이였다. 유아용 물감을 처음 산 것도 이때다. 아이는 붓을 가지고 그리는 물감놀이를 특히 좋아했다. 서툴지만 붓으로 이것저것 그리고 여러 물감이 섞이면서 새로운색깔이 만들어지는 걸 신기해했다. 종이에 물감을 짠 뒤 접어보는 데칼코마니, 왕소금에 물감을 짜서 착색하는 놀이, 물감묻힌 손으로 쿵쿵 도장찍는 놀이까지 물감을 활용한 놀이법은 무궁무진했다.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이는 더 아빠를 자주 찾기 시작했다. 육아휴직 초기의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색하며 열심히 말을 걸고 함께 하는 놀이로 발전시키는 것, 지금도 두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내 비밀 무기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