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된 휴직
매거진에 올린 글을 다시 브런치북에 재연재합니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던 휴직 전 마지막 날의 출근 후 퇴근 길. 먹고 싶었던 간식, 빵들을 잔뜩사고 집으로 복귀하였다. 아내는 나의 휴직예정일에 맞춰서 2주정도 후 복직이 진행되었다.
2주정도 아내와 내가 인생 처음 함께 육아를 제대로 하던 기간. 아이의 생활패턴, 어린이집 적응기간 후의 삶, 밥 시간들은 언제인지 등등. 여러가지를 2주간의 버프기간을 통해서 빠르게 인계인수를 받기 시작했다.
나름 우물안 개구리 마냥 곱게 자란 나에게는 주방일이며, 청소 등도 익숙하지 않았고, 예민하고 빠르게 해야만하는 나의 성격 상 잘 되지 않는 것들은 온통 짜증으로 몰려올 것만 같았다. 육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반복적인 말을 되새기며 버프기간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회사는 앞으로 안가니 아침 잠이나 푹 자보자!’라는 육아휴직의 소박한 단꿈에 젖어 아내 복직 전 잠이든 나. 나의 단꿈은 홀로육아 첫 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평소 나는 늘 아이와 따로 잤는데, 함께 보낸 첫날 밤은 아주 가혹했다. 폭염이 기승이었던 당시 여름, 21개월 된 아이는 수시로 일어났다. “물! 물!”거리며 물을 가져오라하고, 에어컨 예약이 꺼지면 바로 덥다고 악을 쓰며 울어댔다. 아이를 업고, 안고하며 달래다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복직하여 출근하는 아내를 마중하며 멍한 머리로 “당장 아이가 일어나면 뭘 먹이고 입히지? 휴직급여 서류는 어떻게 작성하지? 그리고...” 라며 되뇌이는 사이 현관문은 이미 쾅 닫히고 있었다. 평소 잠투정이 심해 울면서 일어난 딸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토닥이고 달래도 낯선 아빠의 손길에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힘들게 차린 밥을 거의 먹지 않은 딸에게 서운함을 느낄 새 없이 어린이집으로 급하게 향했다. 어린이집 적응까지 마쳐놓은 아내가 고맙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아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를 보내고 정신을 차리니 집안 일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밀린 설거지들, 수북이 쌓여있는 빨랫감, 늘어져있는 장난감들. 무엇을 먼저 정리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특히 요리라고는 전혀 솜씨가 없는 나는 저녁에 무엇을 먹이고, 무엇을 장봐야하는지도제일 큰 스트레스였다. 아직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아이하원하는 시간이 되자 두통이 몰려왔다.
첫 날 저녁, 아내가 언제 올지 시계만 바라보던 나는 퇴근하는 아내의 또각또각 구두 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푹 자보겠다고 내뱉었던 소박한 꿈에 실소가 나왔다. 1년 넘게 홀로 육아를 했던 아내의 삶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