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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육아휴직이라니(1)

육아에 지쳐가는 우리부부

2014년 10월.

우리집에 엄청나게 이쁘고 작은 밤톨이(첫째 태명)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 결혼 후 깊은 생각없이 그 동안 모아져있는 돈을 펑펑쓰듯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던 우리부부는 결혼 2년차 몰디브 여행을 정점으로 아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더 이상의 휴양지를 경험할 수가 없어 보였다. 몰디브의 영롱한 에메랄드 빛 바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산후조리를 마치고 신혼집으로 온 우리 첫째. 예민함과 고음역대의 울음소리를 장착한 밤톨이를 케어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100일의 기적이 아닌 기절을 맛 본후 계속되는 밤샘. 아빠로써 노력한다고 했지만, 실상 빠른 출근과 늦은 퇴근 속에 하루 밤당번이라도 서면 다음 날 졸음, 하품의 연속이었다. 몰디브가 그립구나..

당시 주양육자인 아내의 헌신과 성장별 아이케어, 고목나무 매미마냥 둘이 붙어있어 3살까지 무탈하게 성장한 아기. 아내도 어엿한 직장인이었지만, 경력단절 우려와 함께 긴 휴직도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의 탄생

2016년 어느 날.

역시나 미운 네살이라고 했던가. 3살이 지나자 아이의 우기기 논리를 겸비한 떼쓰기와 울음은 극에 달해갔다. 아내도 어느 덧 복직의 시기는 다가와 예민해져 갔다.

밤샘육아와 만성피로, 아이가 주는 행복감을 지배하는 것 같은 산후 우울증도 우리부부를 지치게 했다. 잦은 부부싸움도 잦아지던 그 시기. 부모님 찬스조차 못쓰는 우리부부 현실 속에 나는 아내에게 공수표를 남발했다.


"그만 좀 해! 내가 휴직해서 보면 되잖아!"


아내는 내가 내뱉은 말을 반드시 지키라했다. 경단녀가 되기도 싫고, 육아에 많이 지쳤다고. 매일 거지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너무 우울해진다고했다. 이해는 하지만서도 일해서 돈버는 내 처지도 이해하라고 하면 싸울까봐, 도망치듯 냉큼 일어나 당시 신혼집 뒷산에 혼자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아, 괜한 말을 한 것 같은데.."라며 본격적인 고민과 불면의 밤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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