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Jan 27. 2022

<그해 우리는>, '오해‘를 ‘이해’로 바꾸려면

내가 최우식이랑 사귄 듯한 이 기분과 여운 뭐냐고


'그 끝엔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는,

너와 나의 시간'에 대한 기록


  윤스테이를 볼 때만 하더라도 배우 최우식에게 이렇게 설레게 될 줄이야, 전혀 몰랐지! 아이가 잠든 시간, 채널을 돌리다가 헐렁한 보라색 후드에 헐렁한 핏의 연청바지를 입은 최우식을 보게 됐는데, 와 그 헐렁하고 자연스러운 핏이 너무 설레버려 나도 모르게 채널을 멈췄다. 소년과 남자 그 중간 어디, 분명 내 기억에는 절대 없는 훈훈하고 아련한 전남친의 눈빛! 


바로 1화부터 다시 보기를 시작했고, 그저께 16화를 본방 사수했다. 에필로그까지 끝난 후의 그 헛헛함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본 드라마 후유증이다. 드라마를 보며 느낀 것들에 대해 뭔가 기록을 남겨 놓고 싶어서 노트북을 펼쳤지만, 막상 뭘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 모든 생각들을 다 기록에 남길 수도 없을 테고.  

EP 03. 내가 널 싫어하는 10가지 이유(SBS 공식 홈페이지) / 바로 이 착장!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6화의 신선하고 깔끔하면서도 촘촘한 결말을 보며, 감독이나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기사 몇 개를 찾아봤는데, 감독 인터뷰 중 아래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이거였던 거 같다, 내가 '그해 우리는'을 보면서 가장 위로받았던 순간은.


 각자의 시점으로 어떤 사람을,
어떤 순간을, 어떤 사건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청춘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엔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시간이 있었다.

  웅이도, 연수도 '겉으로만 봐서는' 그들의 ‘사정’을 알 수 없었다. '사정'이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적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인가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일의 형편이나 까닭'이라고 나온다. '까닭'을 이어 검색해보니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이라고. 그렇다면 '사정'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겠다. '겉으로만 봐서는 그들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가 하고 싶은 말이니까.


 10년 전의 최웅은 나태하고 생각 없는 금수저 도련님으로, 국연수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전교 1등으로 보일 뿐이었다. 10년 후의 최웅에게 표절 작가 누아는 ‘너는 뭐가 혼자 그렇게 잘났냐, 아등바등하는 사람 앞에서 혼자 여유 있는 척, 욕심 없는 척 재수 없다’류의 얘기를 한다. 누아 작가에게 최웅은 그저 '재능도 뭐도 다 가진 놈'으로 보일 뿐이다. 평론가는 최웅의 작품에 대해 ‘자기 세계에 갇힌 어린이의 낙서일 뿐”이라며 평가하고 판단한다. 평론가의 지적은 최웅의 독백처럼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론가와 누아 작가는 모르고 연수만 아는, 그리고 시청자인 우리만 아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웅이의 사정. 우리는 끝에 가서야 왜 그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얼굴로 욕심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모든 해와 시간들을 보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연수와 시청자(나 같은 과몰입 시청자 한정..)인 우리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최웅을 사랑한다는 것. 사랑할 때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인물을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그 인물을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보게 된다.

EP 11.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SBS 공식 홈페이지) / 목소리, 눈빛 다 유죄!

  최웅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국연수의 따뜻함을 알았다. 싫어하는 이유를 열 가지는 댈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연수의 모습을 오로지 그만이 볼 수 있었다.


5년 전의 연수는 ‘힘들다’는 말을 최웅에게 끝내 하지 못했다. 이별 후에 하게 된 통화에서 자신의 형편을 웅이에게 어렵사리 이야기하지만, 사소한 오해로 마음은 채 전달되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흐른 후, 성장한 웅이는 '끝까지 기다린다'. 웅이는 연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연수를 기다리고, 연수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감싸 안는다.


EP 11.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SBS 공식 홈페이지) / 예쁘고 매력적이고 연기도 잘하고!

 웅이와 연수는 서로 '왜?"라는 의문을 품고 헤어졌었다. 웅이는 대체 왜 연수가 자신을 버린 건지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를 알고 싶었고, 연수는 웅이가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 까닭에 대해 서로를 '오해'했지만, 다시 만난 그들은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그제야 제대로 마주하고,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만이 상대가 진정 '왜 그러는지 혹은 왜 그랬는지'를 끝까지 궁금해한다. 제 궁금증을 못 이겨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마음을 보여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상대가 드디어 그 이야기 꺼내고 싶을 때 그 자리에 있어주고, 들어준다. 그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시간’이다.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끝까지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서로의 마음이 '함께' 서로를 향해야 했다. '너'와 '내'가 긴밀하게 연결돼야 했고 그 안에는 함께한 시간들만큼 쌓인 믿음이 있었다.


두 번째는 '너'와 '내'가 모두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기와 속도가 서로 완전히 어긋났다면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깊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신의 축복인지, 그 짠한 청춘들의 노력 때문인지 어쩌면 둘 다 때문인지 이들에게는 마침 ‘그 해’에 그 모든 일이 일어났다.


 이 점에서 '그해 우리는'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16화에서 자신의 시간을 이해하게 되는 웅이와 연수의 모습을 차분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유학이라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그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본다. 연수는 웅이의 제안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 내 인생이 처음으로 좋아지기 시작했어. 처음으로 내가 살아온 길이 뚜렷하게 보여. 그래서 좀 더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나는 내 삶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었나 싶어, 그래서 좀 더 지금을 돌아보며 살아가고 싶어"


  오로지 자신이 '정말 하고 싶고, 잘하는 일에 집중'하며 일정 정도 이상의 성취를 이룬 최웅의 모습을 보며, 연수는 일말의 초라함을 느꼈다. 본인은 '영혼 없이, 재미없이' 그저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 연수였지만, 그 삶은 결코 초라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연수 주변에는 연수를 아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 온 즐거운 일상이 있었고, 그 모든 '해'는 그들과 함께 해온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연수의 일상은 연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빛나고 있었다. 스스로가 열심히, 소중하게 일구어온 시간들. 이를 깨닫는 연수의 모습과 '처음으로 내가 살아온 길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대사가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안심이 됐다. 연수에게 '내'가 먼저라는 게,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게, 그 단단함을 기반으로 최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너는 내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너무 멋진 사람인데, 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 왔잖아. 그런데 연수야, 나는 이제야 내가 뭘 해야 될지 보여.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


연수의 대답에 대한 웅이의 고백은 감동적이었다. 내가 나를 모르고 나의 삶을 납득하지 못한 채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 것이다. 최웅이 엔제이에게 했던 말처럼, 내가 나를 이해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해'를 '한다'는 건, 이유를 찾거나 알게 되는 것에서 그치는 것과는 다르다. 이유는 알아도 '이해'는 하지 못할 수 있다. '이해'는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그리고 '남의 사정을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내가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사정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너그럽게 나를 수용하는 것' 이건 웅이에게도 연수에게도 쉽지 않았다.


 즉, '이해'에는 능동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를 '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너그러이 받아들이겠다는 선택, 나의 적극적인 태도가 포함된다. 그래서 정말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그 대상을 더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기로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웅이가 '내가 지내 온 시간'의 의미를 해석하고, 웅크려있던 제 자리에서 벗어나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모습에 내가 다 기뻤다. '빌린 인생'이 아닌 최웅 자신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소중한 삶. 그리고 웅이와 연수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이들이 각자의 사정과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꺼낸 그 '용기'가 내게도 기분 좋은 전염을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초여름’은 발음만으로도 청량하다. '그해 우리는'에서는 아마도 푸르른 청춘을 상징하는 계절일 것이다. 여전히 깨닫고 성장하며 사랑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인생은 어쩌면 늘 청춘 일지 모른다. Our Beloved Life, 모든 인생은 기록할 가치가, 그러니까 살아낼 가치가 있고, 내 인생의 반짝이는 주연은 오로지 '나'라는 사실을 눈부시게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알려준 완벽한 드라마였다. 남편 제안대로 5월쯤엔 소주 한 잔 하며 꼭 다시 정주행 해야지 :)

연기, 연출, 대본 모든 것이 내겐 완벽했던 드라마였다. 포스터에 OST 마저 완벽♡


이전 13화 육아, 나의 내면 아이를 돌보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