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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9. 2022

혼자 <2022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보다가

아 잠깐 눈물부터 좀 닦고


올해 초에 유튜브로 <2022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봤다. 그러다 얼마 전에 알고리즘으로 해당 영상이 뜨길래, 다시 보게 된 날 들었던 생각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브런치에 <20대가 전생 같아 멀미 나는 기분>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막 40대로 진입한 나는, 현재 32개월 아이를 가정 보육하며 말 그대로 매일이 규칙적인, 바른생활을 하고 있다.


삼시 세 끼를 제 때 챙겨 먹고 아이의 수면 리듬에 맞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사실 원래 아침형 인간이긴 하다). 아침을 준비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간단히 청소를 한 후, 동네 놀이터 도장깨기를 한다. 들어와서 씻기고, 로션 전쟁을 치르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재우고, 책을 보고 글을 쓰다가, 간식을 챙겨주고, 그 사이사이 아이 책을 몇 번이고 같이 읽어주다가, 같이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을 먹고, 치카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아이는 8시쯤, 나는 10시~11시쯤이면 잠에 드는 생활. 아이의 성장에 따라 디테일은 바뀌기도 하지만 큰 틀은 위와 같다.


2022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라인업과 무대 연출 그리고 아티스트들의 공연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미친 수준이다. 에미넴이 등장하고 Lose Yourself가 울려 퍼질 때는 말 그대로 소름이 돋는다. 어쨌거나 전체 공연의 완성도나 수준을 떠나서 그 모든 음악을 "2022년"에 듣고 있자니 아니 이게 너무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거의 20년이 지난. 그 2000년대 초반 감성이라니.


당장에 친구들과 홍대나 강남 nb에 있는 기분이랄까. The next episode, Still D.R.E., In da club이 나오면 어디 구석에 있다가도 다들 튀어나오지 않았던가. 이 공연을 몇 번을 돌려 보다 새삼 놀라웠던 건 내게 이 음악들에 새겨진 부정적인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2014~2017년 사이에 자주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게 될 때면 마음 한편이 덜컹 내려앉고, 어딘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안하고 초조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랫배가 싸르르 아파 오는 느낌. 당시의 힘겨웠던 정서가 그대로 떠오르고, 그 자리로 소환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잘 듣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곡들을 들으면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오로지 그 시절의 '흥'만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나름의 불안이나 걱정은 다소 어두운 그 '흥'안에 어느 정도 녹일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시절 불안의 정도라는 것이 그 흥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의 것이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모든 결정적인 것들은 아직 수면 아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십 대가 마냥 신이 나고 빛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때도 나름의 빈 구멍과 흑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나다움'이 증발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자기혐오에 시달리게 된 건 서른 이후부터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이를 모르고 있진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십 대의 나는 소위 무용하다고 하는 것들에 많은 시간을 썼다. 문학은 전공 때문에라도 늘 가까이 있었고, 예술의 전당도 세종문화회관도 호암 미술관도 좋아했다. 인사동에 있는 크고 작은 갤러리도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다녔다. 광화문의 시네큐브, 스폰지 하우스, 미로 스페이스. 이대 앞 파가니니, 홍대 에반스와 프리버드, 클럽 타. 적고 보니 괜히 낯간지러운 추억의 이름들이긴 하지만.


20대라고 퉁쳐도 10년의 시간이다. 결국에는 한 때 스쳐 지나가는 장소에 그친 곳도, 오래도록 좋아하는 곳으로 남은 곳도 있다. 어쨌거나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은 마음껏 누릴 수 있던 시절이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들을 충분히 즐기며, 나름의 제 색깔을 유지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삼십 대 부터 그 무용한 것들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이후 삼십 대 중반까지 대혼란기를 겪으며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다. 그게 어떤 단 하나의 사건 때문에만 생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에 몇 가지 커다란 계기가 쌓이고 쌓여 결국 무너진 것이라고 짐작한다. 단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무너진 상태인지 그 순간에는 알 수가 없었다.


퇴사를 하고 육아를 하며 나 자신에 대한 공부가 자연스레 시작됐다. 다시 책을 읽고 취향에 맞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사색하고 글을 쓴다. 보고, 생각하고, 쓰는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공부이고, 치유이기도 하다. 나는 나 자신을 천천히 되찾아 가고 있다.


적어도 예술이 내게 주는 선물은 나를 잊게 만듦으로써 나를 찾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를 곳은 물론 20대 때의 장소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가히 예술적인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보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 영상을 10번 넘게 본 거 같은데, 에미넴의 Lose yourself 전주가 시작되는 부분은 플러스 10번 정도 더 본 거 같다. 이제는 정말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아 그전에 먼저 눈물부터 좀 닦고.


You better lose yourself in the music, the moment

You own it, you better never let it go

You only get one shot,

do not miss your chance to blow

This opportunity comes once in a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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