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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06. 2022

'마감'이 없는 삶에 익숙해지면

대신 '끝이라고는 없는 일들'이 가득한 일상이지만


나는 지금 두 돌 아기를 가정보육 중이다. 직장 생활 당시에는 비교적 빡세게 일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는데, 뭐 그 일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서 그랬던 건 아니고(초반에는 그 일 자체에 열정을 갖고 있었지만), 혼자 일하는 거 아니니까 민폐 끼치기 싫고 계획대로 안 되는 거 싫고 등등 그래서 자발적 노예 모드에 깊게 몰입한 타입이었달까.


  특히 '마감'에 엄청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했었다. 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를 하고 변수의 변수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기 바빴다. 하지만 뭐 그 많은 변수들을 다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크게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건 디데이가 있고, 그날까지의 to do list는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거고, 그 과정의 힘듦이 뻔히 예상되지만 어쨌거나 끝을 향해 꾸역꾸역 해 나가야 하는 그 기분이었다. 일을 즐기면서 일정 정도의 스트레스도 잘 견뎌내는 그런 건 나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고, 직업의 영역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분야가 됐든 그가 진정 부럽다.


  짧지 않은 시간을 "마감이 있는 삶"을 살아온 나는 이제 "마감이 없는 삶이 주는 편안함"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당연히 관련된 스트레스가 줄고 몸에 긴장과 독소도 천천히 빠져나간 느낌이다. 무엇보다 아주 어렵게 얻은 고요한 마음. 얼마나 오랜만인지. '꼭 언제까지 뭘 해야만 하는 삶'으로 돌아가면 어떨지 상상이 잘 안 된다. 물론 지금의 일상에서도 당연히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지만, 돈을 받으면서 남들과 함께 하는 일의 '마감'과는 성격이 좀 다른 것이다.


   언젠가 그 삶으로 돌아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꼭 이전처럼 9 to 6의 구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마감에 쫓기는 그 기분을 감당할 수 있을는지. 물론 닥치면 또 어떻게든 하겠지만 나의 무언가를 '갈아 넣으며 집중하는 그 고통의 시간'이 좀 낯설어진 것이다.


  그런데 적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그때는 그 고통의 시간을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버텨낼 다른 힘이 생겨나 있지 않을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기준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 일을 겪을 건 '미래의 나'이고,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모든 걸 똑같이 바라보진 않을 것이다.


마감에 쫓기는 삶으로 '돌아간다'기 보다, '나의 무엇을, 어디에, 그리고 얼마 큼을 쏟느냐' 자체가 이전과는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대전제가 바뀌어도 마감은 존재할 것이지만, 그 대전제가 바뀌는 게 많은 걸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써 내려가다 보니, 역시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걸 당겨서 걱정하는 패턴의 사고를 또 해버린.. 이런. 아마 최근 '마감'에 계속 쫓기고 있는 남편을 보며 그 힘든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저 지금은 눈앞에 놓인 마감이 없는 시간을 충실히 즐기며 잘 보내고(대신 아이를 돌보면서 생기는 다른 제약들, '끝이라고는 없는 일들'이 내게 충분히 있지 않은가), 데드라인에 쫓겨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마감이 생긴다는 건 어떤 종류든 다른 돈벌이가 생기는 것일 텐데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일 것이고. 다 쓰고 보니 이 글은 그냥 "내가 요즘 마감에 쫓기지 않아 마음이 좀 편한데, 나중에 그 쫄리는 기분을 다시 어떻게 감당하려나 생각하니 싫다 싫어 아몰랑 나중에 생각해"를 되게 길게 쓴 글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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