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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7. 2021

<평균의 종말>, 나는 정상일까

나다움의 탄생


‘평균의 종말’은 내게 꽤나 의외의 책이었다.

평소 문학, 예술 분야 쪽에 관심이 다소 편중되어 있기에 이 책은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일종의 균형을 위해 고른 책이었다. ’평균의 종말’이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당신은 특별한 존재다’라는 소프트한 내용. 물론 저자의 문제의식부터 대안 제시까지 서술되는 내용과 표현 방식은 소프트하지 않다.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우리는 모두 특별한 경우다’,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메시지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이상적인 얘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내가 책을 읽는 건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한 번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의 방향을 틔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서 끝까지 완독 했다.


  책의 앞부분에는 평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된 히스토리를 훑는데 이해하기 쉬운 흐름으로 명료하게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평균의 시대, 곧 1840년대 케틀레의 사회물리학적 착안에서 비롯돼 오늘늘까지 이어져온 그런 문화적 시대를 특징짓는, 사회의 모든 일원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2가지 개념을 설명한다. 이는 케틀레의 평균적 인간 개념과 골턴의 계층 개념(재미있는 내용인데 책으로 직접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이다. 19세기의 산물인 평균주의는 지금까지도 우리 삶의 모든 곳을 지배하고 있다시피 하지만 오늘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더 이상 산업 시대가 아니다. 


케틀레가 그러했듯 우리 모두도 평균이 정상을 판단하는 믿을 만한 기준이라고 믿게 됐다. 특히 신체건강, 정신 건강, 성격, 경제적 지위와 관련해서 유독 그런 믿음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과라는 편협한 기준에 따른 개개인의 계층이 개개인의 재능을 판단하는 유용한 도구라는 믿음도 갖게 됐다.(p.63)

 

 평균을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평가하는 평균주의는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한다. 특히 각자의 독자성이 성공에 이르는 길에 놓인 장애물 혹은 비효율적인 한눈팔기쯤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내용에 공감했다. 


나는 대학 입학 후 1년 동안의 학점이 극과 극이었다. 즉 좋아하는 과목은 A, 덜 좋아하는 과목은 C였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학기부터는 전체적으로 B+로 맞춰보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다음에 모든 과목을 A대로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이와 같은 생각을 한 배경에는 ‘평균’에 대한 나도 모르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저 좋아하는 과목은 4년 내내 A, 덜 좋아하지만 꼭 들어야 해서 듣는 관심 밖 과목은 그냥 C인 채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좋아하는 과목이 훨씬 적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무엇을 하게 되든 '평균보다 뛰어난' 학점을 얻는 게 당연히 안정적이라고 생각했기에 마냥 내가 좋아하는 과목 위주로만 공부할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A학점에서 C학점 정도까지의 차이는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과목들을 보다 마음 편히, 보다 많이 파고들어 공부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학교와 직장생활과 삶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의 편협한 기대치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p.93)


  나의 개성이나 독자성을 다소 불필요한 것, 쓸모없는 것으로 느꼈던 것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이는 휴직 후 처음 끄적일 때 썼던 글 ‘쓸모없어도 괜찮아’에서 정리했던 내용이다. 나의 직장생활은 ‘나’를 직장이라는 ‘시스템’에 잘 맞추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 버렸던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누가 시킨 거 절대 아님.. 그냥 혼자 알아서 그랬음). 그 불필요한 부분들이 곧 나의 독자성이기도 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는 방식에 그런 방법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안타깝지만 그땐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얻은 게 전혀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닐 것이다. 대신 '나'를 잃어버려서 그렇지.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소거한 나 같은 사람이 아니어도 어쨌거나 조직에서 한 개인이 온전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건 쉽지 않다. 특히 '평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문제는 이 현실 자체보다는, 표면적으로는 창의적이게 하라, 주도적이게 하라, 네 색깔을 찾아야 한다, 이런 걸 자꾸만 요구한다는 것. 그래서 아래 문장이 꽤나 속 시원했다.


기업, 학교, 정치인들 모두가 하나같이 개개인성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현실은 누가 봐도 모든 것이 당신보다 시스템이 중요하게 설정돼 있는 상황이다.(p.94)


  저자는 이런  ‘표준화된 세상’, ‘규범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개인학 science of the individual’을 제시하고 있다.


개개인학은 평균을 개개인의 이해를 위한 주요 도구로 삼길 거부하며 개개인을 이해하려면 개개인성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 한다는 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 실제로 개개인성의 원칙은 모든 영역에 차츰차츰 적용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예외의 영역이 한 곳 있다면 이 원칙이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한 영역, 바로 당신 자신의 삶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개인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그래도 사회 전반에 걸쳐 차츰차츰 적용되고 있는 중이다. 정작 이 개개인성이 제외되는 영역은 오히려 '개인의 삶'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내 삶의 영역만 놓고 보면, 내가 평균 혹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기준에 맞춰 나 자신을 판단하는 일은 아주 차고 넘쳤으니까. 그나마 많이 내려놓았다는 요즘도 가끔 그 생각의 메커니즘에 빠져 버릴 때가 있으니까 이건 아주 고질적인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을 자세히 설명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어 내려간 건 <경로의 원칙>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가 평균주의 사고에 속아 믿게 되는 또 하나가 바로 ‘정상적’인 경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거나 배우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하나의 올바른 경로가 있다고 믿는다. 이는 그 목표가 걸음마 떼기처럼 기본적인 목표이든 생화학자가 되는 것처럼 어려운 목표이든 간에 마찬가지다. (...) 평균적인 사람, 아니면 적어도 성공한 졸업생이나 전문가 같은 본받고 싶은 어떤 특정 그룹의 평균적인 일원이 따르는 길이 올바른 경로라는 것.(p.182)


경로의 원칙은 다음의 2가지 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첫 번째,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는, 그리고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역시도 똑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두 번째,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당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p.190)



우리는 흔히 어떤 특정 목표에 이르는 경로는 저 밖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걸어갔던 여행자들이 닦아놓은 숲 속의 보행로 같은 경로가 있다고 여기며 삶에서 성공하는 최선의 길은 그런 잘 닦인 보행로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로의 원칙은 우리에게 다른 얘기를 전해준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자신만의 경로를 처음으로 내고 그 길을 닦으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나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따라 매번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능성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 우리가 올바른 길에 서 있는지를 판단할 유일한 방법은 그 길이 우리의 개개인성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p. 203-204)


 내가 올바른 길에 서 있는지를 판단할 유일한 방법이 ‘그 길이 나의 개개인성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면, 이는 결국 ‘나’의 ‘개개인성’은 무엇인지, 곧 나는 누군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위 내용은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기도 하다는데, 자연스레 뒤따르는 아래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수성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유용한 길이 어딘가에 있지만, 그 길이 어떤 형태일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했다.(p.208)


 누군가에게 이것은 어쩌면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게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한 번뿐인 인생에 맞닥뜨리는 많은 선택의 순간들. 우리는 누구나 나에게 맞는 선택, 가장 좋은 선택, 우수성을 이루기 위한 선택을 하고 싶어 하지 않나. 결국 그때 선택의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나’ 여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 '나다운 선택'을 해서 '나다운 길'을 찾아 가는 것.


  이렇게만 쓰고 보면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어쩌다 보니 글을 쓰면서 계속 반복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는 이게 또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예상한 내용이 위와 같은 내용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출발, 다른 경로를 통해 이르게 된 메시지가 그만큼 더 크게 와닿았다. 나도, 아이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개개인성을 감추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다움'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2020년 6월 14일 작성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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