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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1. 2021

육아, 나의 내면 아이를 돌보는 시간

제가 제 삶을 살기 시작한 지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어요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이슬아 작가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중 한 부분이다. 밑줄 친 문장이 너무나! 공감됐다. 이슬아와 유진목의 대화이며, 밑줄 친 부분은 유진목의 말.


  2021년, 아기는 두 살이 되었고, 이제 16개월 아기(이 글을 브런치에 옮기고 있는 현재에는 21개월) 답게 자기주장을 땅땅 펴기 시작했다. 작은 인간인 너의 의지와 너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싶은데, 마음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네. 뭐든 적정선을 찾는다는 게 참 쉽지 않아.


나는 이제 서른아홉.

그런데 나도 이제야 두 살인 것 같은 기분은 뭘까.


  아이의 탄생과 함께 내가 다시 태어났다, 뭐 그런 거창한 건 아닌 거 같고.. 처음 해보는 육아를 위해 다양한 계열의 육아서를 읽다 보니 그 책들을 읽는 건 아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나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러면 내가 좀 더 안정되고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아서. 실제로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육아'에 대한 나의 혼란과 당황스러움을 이해하기도 했고('엉엉 나만 이러는 건 아니었네') 나와 아기에 맞게 방향을 수정 보완해 갈 수 있는 착안사항을 얻기도 하고.


  특히 여러 책에서 말하는 핵심사항 중에 하나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올려보고 나름의 언어로 정리를 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는 거였는데, 아기를 돌보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유년시절과 자라난 환경을 톺아보게 됐다.


  나의 오랜 쓴 뿌리들,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한바탕 쓰라린 진통을 겪었다. 이에 대한 글을 시간이 더 흐른 후에 쓰게 될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간단하게만 써두자면,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 아닌 모습으로 지나치게 애쓰고, 결핍의 원인을 모른 채 엉뚱한 곳에서 결핍을 채우려 들었던. 일찍부터 겉으로는 어른이 됐지만, 내면 아이는 그에 맞춰 자라지 못했던. 물론 이렇게 해서 밖으로 드러난 모습, 그것도 '나'겠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자연스럽게 그 혼란 속에 빠져들며, 현재의 내가 왜 이런 장점 혹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런 선택들을 하면서 살았는지, 타인과의 여러 관계에서 내 모습이 왜 그랬었는지 등 나를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혐오를 벗어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성찰로 이르는 과정. 무작정 나를 싫어해서는, 내가 싫기만 해서는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 뭐가 문제였고, 왜 그랬는지를 이해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온전히 나로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미움을 받는 건, 나 아닌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미움을 받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참 무지했고, 스스로를 오해했다. 나 자신을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게 알아가다 보니 마치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위의 책에서 밑줄 친, "삶이라는 게 얼마 안 되었어요. 제가 제 삶을 살기 시작한 지가 정말 얼마 안 되었어요"라는 문장이 그렇게나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그 시기 이전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도.


아이가 무수히 넘어지고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연습해 나가듯 나 역시 넘어지고, 뒤뚱거리며 연습 중이다. 어떤 깨달음이 있다고 해서 단번에 짜잔 하고 멋진 모습으로 또각또각 걸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퇴행처럼 보이는 모습들이 튀어나오고.. 그게 좀 머쓱하기도 하고 이런 쪽에 가깝지.


나를 알아가고, 고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 나의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를 잘 기르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엄마인 내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쓴 뿌리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테고.. 그러려면 잔잔히, 오래 노력할 수 있는 몸의 체력과 마음의 근력 모두 필요하겠지.


그래서 나는 너와 나를 '함께' 돌볼 것이다. 너를 챙기는 만큼 나도 챙기고, 너를 살피는 만큼 나도 살필 것이다. 이런 나를 진심으로 격려해주고, 대화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마음을 나눠주는 남편과의 관계에도 건강한 최선을 다할 것이다.(여기에 이르기까지 꽤 많이 싸운 거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다행히 가치 있게 '잘' 싸운 것 같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이 노력하고 같이 성장해 나간다면, 그것만큼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


(2021년 6월 19일 작성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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