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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Jul 26. 2022

내 앞에 온 사랑

사랑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무섭지 않아? 하고 소라가 묻습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 영향을 주고 그 아이가 뭔가로 자라가는 것을 남은 평생 지켜봐야 한다는 거 … 계속 걱정해야 하는 뭔가를 만들어버린다는 거 … 무섭지 않아?

… 세계는 어때? 괜찮아? 아기를 낳아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괜찮아? 나를 왜 태어나게 했어, 아기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지?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아이가 뭔가로 자라가는 것을 평생 지켜보는 거.. 그래 내가 살아가며 단 1초도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를 옆에 두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 어렵고 두렵고 불안한 일이다. 아이 하나를 낳아 기른지 6년차,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둘째 낳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산통을 겪고 아래에 힘을 주어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며 젖몸살을 앓는 건 한 번 더 할 수 있다만, 아이를 기르며 그보다 더 불안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이 키우는 일이 지옥 같이 끔찍했다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것은 정말이지, 아니다. 네, 아닙니다. 나는 아이 키우며 사랑과 행복에 겨운 사람이 되어서.


사랑과 행복에 겨우면서,

감당할 수 없는 축복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어느 정도는 감당하는,

그 오묘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그건 말이다. 


나를 사랑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기적이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난 애로사항이 많은 사람이야, 문제적인 인간, 오류 투성이! 죽을 때까지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할지도 몰라, 하는 절망감 따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었다. 나 아닌 타인을 향해 어디까지 자애로울 수 있는지, 어느 지점까지 인내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며 나 자신을 새롭게 마주했다. 나를 중심으로 한, 그 말뿐인 사랑에서, 너의, 너를 위한, 너에 의한, 온전히 너를 향한, 그 진실한 사랑으로. 그리고 그 사랑이 너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얼마나 경이롭게 변화시키는지 알게 되었다.


내 안의 감수성을 흔들어 깨우는 명랑함이었다. 


갓난 아기의 순수함과 동화 같은 감성을 지켜주려 할 때, 이십대 내내 소멸해 있던 내 감수성이 되살아났다. 말 못하는 아기의 마음을 읽기 위해 아기의 마음 속으로, 머릿속으로, 꿈속으로 드나드는 상상을 수백 수천 번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기르기 전만 해도 MBTI 검사에서 수차례 ISTJ(잇티제)가 나오던 내가 이제는 ISFJ(잇프제)의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내 삶에 F를 초대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과 감수성은, 아이 키우는 두려움과 불안을 서서히 물러가게 했다. 아이가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고 인생이 불행해질까 불안해 하는 마음도 몰아냈다. 엄마가 너의 모든 것을 지켜주마, 하는 용기나 자신감이 아니라, 아이와 내가 삶이라는 거대함 속에서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하며, 행복은 행복대로 불행은 불행대로 우리가 삶을 희망적으로 해석하며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이 싹터온 것이다. 





 

방학을 맞이한 아이가 엊그제 혼자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더니, 내게 선물이라고 가져왔다. 편지였다. (일기쓰기, 편지쓰기, 계획쓰기, 쓰기 소녀 내 딸!)


"엄마, 정말 고마워. 나 요리하는 거 도와줘서. 나 미술 놀이하는 거 도와줘서. 다 고마웠어."


감사를 표현하라고 가르친 일이 없는데 5년간 내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가 감사한 마음을 못 이기고 서투른 한글 실력으로 쓴 편지였다. 글로는 표현이 다 되지 못했는지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하트와 별 모양을 그렸다고, 이 모양하고 색깔을 잘 보라고 했다. 편지를 쓴 이 아이의 엄마여서, 내가 그녀의 엄마라서, 난 짧은 편지 안에서 아이의 모든 사랑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 삽니다.


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두렵고 불안한 일임에 틀림 없지만,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여요. 그게 다라면, 저는 솔직하게 아이를 낳지 말라 권하겠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랍니다. 내가 아끼는 누군가에게, 아이를 낳지 말라고, 이제 그런 말은 못하겠습니다. 


아이는, 우리 앞에 온 사랑입니다.



2022.07.26

잠들기 전 아이와 매일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서 주장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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