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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Dec 20. 2022

그림책 『메두사 엄마』와 나라는 엄마

엄마, 나 유치원 갈래

그림책 『메두사 엄마』를 읽고 돌아본 나

"안 돼요. 당신은 이리제를 안을 수 없어요. 얘는 내 아이예요."

- 키티 크라우더, 『메두사 엄마』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싶었다. 


억지스럽게 아름다움을 만들고, 부자연스럽게 선한 마음을 갖겠다고 애쓰다가 여러 차례 탈이 났던 이십 대의 기억 때문에. 엄마로서 다시 태어났을 때 난, 가장 먼저 자연스럽고 싶었다. 


유난스럽게 육아 정보를 찾아 나의 육아에 적용하거나 대입시키고 싶지 않았고. 별난 육아를 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릴까봐 (이것이 누가 보기에는 별나 보이고 특이해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저 내 앞에 있는 이 작은 아이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우리의 삶의 양식과 문화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육아'라고 생각하며 이 날까지 아이를 키워 왔다. 엄마의 유난스러움도 습관인 것 같아 아기 때부터 육아 정보에 매달리거나 육아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아이가 누리는 경험과 인지하는 세계 대부분이 우리 부부의 삶에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해 가정의 문화와 가치를 세우는 일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건강한 신체 습관과 루틴, 신앙과 문화생활 등이 그것들이었다. 아이도 잘 따라와 주는 것 같아 감사했고, 이렇게 착한 아이를 볼 때마다 내가 괜찮은 엄마인 것 같아 안심했다. 






올 가을, 아이 여섯 살 끝무렵이 되어 인근 동네(하지만 학군은 다른)로 이사한 나에게 동네 엄마들이 심심치 않게 이런 질문을 했다.



"아이 이제 어린이집 안 다니고 유치원으로 옮기시죠?"

"이사간 곳 초등학교 잘 적응시키려면 1년 전에 유치원 옮기시는 게 좋겠어요. 당연히 그렇게 하시죠?"

"너가 의외로 교육에 관심이 없더라. 왜 유치원에 안 보내?"

"아직도 거기 어린이집 다니는 거에요? 한 번 즈음 기관 바꿔주는 것도 좋을 텐데."



이런 질문을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받아보고 나서 돌이켜 보니 아이는 종종 어린이집이 재미 없다는 말을 했었고 유치원에 가고 싶다는 말도 꽤 자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해는 아예 공식적으로 주 1회 등원을 하지 않았다)


세 살부터 지금까지, 4년을 다닌 어린이집. 그 어린이집 친구들을 주일에 교회에서 또 만나고.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싶고 새 건물에서 다른 컨셉의 놀이와 배움을 원했던 아이의 계속되는 요청에 완전히 귀를 닫고 있던 날 발견하게 되었다. 놀랍고 소름 끼치는 발견이었다.


1년에 한 번 전학을 다니느라 늘 이방인처럼 살았던 나, 이 과정에서 외향성과 긍정성을 상당히 잃어버린 탓에, 아이를 키우며 '흔들림 없이 건실한 환경 속에서 심리적 평안감을 최대치로 누리는 유소년기'를 보내도록 하는 것이 나의 최대 목표였음을 고백한다. 어린이집과 함께 보냈던 학원 두 곳을 중단 없이 2년간 보낸 것도 같은 이유였다. (5, 6세에 두 곳 학원을 2년간 보내는 게 쉽지 않은 일임에도) 내 아이를 몇 년이나 내리 키우며 엄마인 나만큼 내 아이를 이해해 주는 선생님들을 떠나기 싫었다. 


다른 엄마들은 기관 커리큘럼을 꼼꼼이 비교하다 그도 부족하면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도 보낸다는데 난 그런 것을 따질 것도 없이 아이 세 살 때 선택한 첫 어린이집에 아무 고민 없이 4년을 열심히도 보냈던 것이다. 집에서 나와 상호작용하며 배우는 것으로도 아이의 교육은 충분하다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세상에 교만하여라)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 더 많은 친구, 더 높은 경험의 세계로 인도하는 건 아이 삶에 불안정성을 더하는 것 아닐까 걱정했다. (어린이집 보육과정이 유치원 교육보다 질이 낮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올초에 한 번, 이 가을에 한 번 아이와 함께 읽고 있는 그림책이 있다. 현대 그림책 장인으로 불린다는 키티 크라우더의 『메두사 엄마』. 엄마들에게 참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겠구나, 하고 나 혼자 읽으려 했던 건데 올해 아이의 최애 그림책 중 한 권이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장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미혼모 메두사가 사랑스러운 딸 이리제를 낳고서 그 긴 머리카락으로 아이를 안고, 먹이고, 가르치고, 놀아준다. 하지만 이리제가 바깥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을 무척 경계하는 메두사. 학교에 가고 싶다고 애원하는 이리제의 요청을 거절하다 끝내 보내주게 되는데, 이리제가 '엄마는 나 따라 학교에 오지 마시라. 아이들이 무서워하니까.' 라고 하는 말에 장발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고 학교에 나타난다.


메두사 엄마의 장발의 머리카락은 아마 메두사 엄마 본인의 연약함과 한계, 상처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리제가 학교에 가고 싶다고 애원하는 페이지에서 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얼른 메두사 엄마가
머리를 잘라야 할텐데.. 그치?



엄마, 얼른 엄마도 어릴 적 엄마가 전학 다닐 때마다 새 친구를 만나 불안해 하고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을 그만 하고 나 좀 유치원에 보내줘. 나 새 친구들 만나서 같이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도 하고 싶어.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맨날 나 아기 취급하는 이야기 하지 말고. 나 화장실도 혼자 가고 한글도 쓸줄 아는데. 얼른 유치원 보내줘.


이미 너무 오래된 나의 유년기 이야기는, 사실 더 이상 나의 상처도 무엇도 아니다. 다만 아주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 심리에 아직도 작용을 하는 듯 보인다.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서른 일곱 살 엄마가 되어서도.


아이와 함께 유치원 두 곳 상담을 다녀와서 최종 한 곳을 결정했다.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유치원이란다. 아이와 손잡고 나오면서 나의 '길고 긴 머리카락(실제로 난 단발이지만)'을 시원하게 숏컷한 기분이 들어 후련했다. 


엄마도, 새로운 마음으로 널 키울께.

나보다 더 잘할, 내 딸.



2022.12.20

아이의 유치원 입소를 확정짓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나눈 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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