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부세계에서 경험하는 것은 우리 생각의 결과다. 나의 내면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 외부세계다.
나 자신에게 ‘난 충분하지 않아, 난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 매일 그 말과 똑같거나 닮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나의 말이 내 미래에 대한 예언이 된다.
나에 대한 정체성, 패러다임을 제대로 형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원하는 미래에 대한 최종그림을 완성해서 뇌에 새겨 넣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단기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인 것이어야 한다.
단기적인 비전을 새겨 넣었는데 단기간 내에 성과가 없으면, 뇌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게 되면 아무래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자신에게 시간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면 매일 아침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미 성공한 내 모습을 뚜렷하게 그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존재다’라는 인식과 믿음을 갖게 된다. 세상일이 모두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모든 일이 나를 위해 펼쳐진다.
목표를 달성한 나의 모습을 제대로 시각화하고, 그것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되, 그것은 반복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내면이 외부에 반영되면, 내 앞에서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나 같은 사업가가 6개월 또는 1년 만에 무언가를 크게 이루려는 목표를 가졌다고 하자. 그러면 매일 무언가 변화를 줄 수 있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된다. 그래야 내가 설정한 그 기간 내에 현실화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연법칙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이룰 수는 없다. 도토리를 심고 한 달 만에 도토리를 생산할 수는 없다. 시간을 주어야 한다. 목표설정, 현실화행위, 반복행위에 더하여 ‘시간’이라는 것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가 3차원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3차원 세계에서는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나에게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지 않았을 때 엄습한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큰 인내심을 가졌다.
장기비전을 갖지 않게 되면, 단기간 내에 얻어진 덜 익은 열매에 취할 수 있다. 도파민을 유발하는 단기적 성과에 중독되게 된다. 이것은 궁극적 목표달성에 치명적인 독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일관되게 하는 말은 ‘소망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인내력과 헌신이 필수’라는 것이다.
내면의 거울은 내가 생각하는 감정보다는 그 ‘내용’자체를 현실에 투영한다. 내가 부자를 미워한다고 할 때, 미움이라는 감정이 현실에 투영되는 것이 아니다. ‘부자’를 미워하는 것이 현실세계에 투영되고 ‘부자’가 내포하는 풍요로움을 끌어당길 수 없게 된다. 계속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게 되면, 결핍을 현실에 끌어당기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집중하기 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내면의 거울은 가진 것을 더욱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현실화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것은 지속적인 풍요를 불러온다.
현실세계는 내면의 거울에 비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내가 억만장자가 되고 싶으면 내면에서 이미 억만장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돈을 잘 버는 사람이라고 내면을 세팅해야 외부세계도 그렇게 현실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