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사업가
요즘은 누구나 나와 다른 사람의 MBTI 유형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는다. 나랑 가장 잘 맞는 MBTI는? 내 유형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특히 나와 같은 “I”형은 고민이 많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소극적인, 조용한 성격이 스스로 싫었던 터라, 과연 내가 사업을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많이 했다.
공무원일 때, 외향성을 갖는 “E”형 들이 자기표현을 잘하고 일에서 성과도 잘 내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그 외향성과 적극성 때문인지 본인이 원하는 자리에 쉽게 가 앉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외향성을 길러볼까 하는 마음으로 여러 노력을 했는데, 잠시 바뀌는가 하다가도 결국은 제자리로 오고 말았다.
타고난 성격은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자신의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말 끊임없는 도전과 용기가 필요하다. 상처도 많이 받는다. 그 상처가 공황장애, 우울증, 무기력증 등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공황장애를 겪어본 나는 “I형”들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살기 힘든지 잘 안다.
그런데, 현실은 외향성을 지닌 사람들이 잘 나가도록 설계돼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나조차도 직원들을 뽑는데,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에게 우선 눈이 간다. 그러고 보니 나랑 친한 친구들 상당수도 외향성을 가졌다.
스타트업 대표를 해보니, 남의 앞에 나서서 발표할 일이 정말 많다. 특히, 스타트업 특성상 외부 투자를 유치해야 하고, 정부지원금도 신청해야 하는데, 사업제안발표를 할 때가 많다.
여러 사람이 나의 표정하나, 말투하나를 지켜보는 앞에 장시간 서서 발표하는 일은 정말 고문 그 자체다. 어떤 때는 쓰러질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변호사로서 법정에 서는 일 역시 너무 힘들다. 의뢰인은 큰 기대를 안고 변호인의 변론을 지켜보는데, 판사, 검사, 방청객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해야 하는 것은 형벌이다.
타고난 조용한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절대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끔씩은 ‘외향성’을 가진 것처럼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비겁한 나를 용서해야 한다.
비겁하지만 나에게 박수를 쳐주면서 혼신의 연기를 펼쳐야 한다.
극복까지는 아니라도, 외향성을 갖추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기대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저 사람 I형 인간이구만’이라고 지껄이든 말든, 내가 준비한 말만 충실히 하는 것이다. 피하지 않고 하려는 자세가 중요하지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남들에게 들키는 것도 감수하고 내려놔야 한다.
둘째, 스피치가 잘됐을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인데, 효과가 꽤 좋다. 내가 ‘이 부분에서 웃겨야지’라고 했는데, 웃음이 빵 터졌을 때 그 느낌을 상상하면, 대부분 그렇게 된다. 소소한 성공이 모여지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다.
셋째, 외향형 인간들도 때로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안다면 조금 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결국, 내 사랑하는 가족, 아끼는 직원들을 위해서 내향 사업가는 어떻게 든 외향성을 무기로 구비해야 한다. 가끔 꺼내어 혼자 휘둘러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살짝 꺼내어 겁주는 정도로 휘두르는.
우리가 알만한 유명한 기업인들 중 상당수가 내향인임을 명심하자. 내향성의 강점을 잘 활용한 사람들이다. ‘조용한 카리스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