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버 메이트의 <몸이 아니라고 할 때>를 읽고...
이 책을 도서관에서 접하고, 제목에서부터 느꼈지만,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통증>이라는 시리즈의 글을 쓰면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좀 더 전문적으로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많은 점을 느끼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암과 흑색종, 천식 등의 질병들이 모두 온전히 감정억제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 우리가 감정을 억제하면서, 그로 인해 우리의 관계들과 삶, 몸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꽤 두꺼운 책이고, 이해하기 힘든 상당히 전문적으로 의학적인 내용들도 들어있어서, 나는 이 책을 다 이해하면서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요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끝까지 보기는 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가?
이 책에서는 "유리병을 밀봉하듯이 감정을 억압하는" 이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적응시켜야 하는 내부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였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느라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보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자신을 독립된 인간으로 보는 인식이 빈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결코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반응하며 살아"간다. 우리는"치러야 할 대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태도를 거부해야 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이 일은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꺼낼 줄 알아야 한다.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태도, 자신의 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은,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욕구가 무시되고, 친절을 베푸는 일이 악용되는 상황에 사람들을 빠뜨릴 가능성을 높인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은 미성숙한 남편에게 끌려다니느라 자기감정은 억압해왔고, 자기주장 능력이 지나치게 결핍되어 있었다.
"저는 묵묵히 참기만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종만 하는 사람이었어요. 모든 일이 항상 제 탓이었습니다. 저는 불안했습니다. 가끔은 그가 모든 걸 제 탓으로 만들려고 사실을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밑바닥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일을 상처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떤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입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의 밑바닥의 솔직한 감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면, 이 또한 감정을 억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어떤 "아이는 가족의 평화를 지키고 싶어" 애를 썼다. 나는 저자가 "그런 일은 아이가 맡을 역할이 아닙니다."라고 한 점이 울컥했다. 최근에 본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한국 영화에서, 어린 자녀에게 아픈 부모를 잘 지켜주라며 책임감을 올려주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참 답답했다. 이제는 아직 어린데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기보다는 마음이 아픈 아이로 보인다.
나는 위와 같은 사례들이 저자가 책의 후반부에 언급한 "자기와 비(非) 자기의 구분"이라는 주제에 모두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에 자신의 신체와 신체조직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 욕구, 생각도 포함된다고 하면, "비 자기"는 자신이 아닌 것, 혹은 자신의 것이 아닌 신체, 감정, 욕구, 생각 등 일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환자들이 자신의 주장과 타인의 주장을 구분할 줄 모르고, 독립성과 주체성의 부족으로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끌려다니며 자신의 감정은 억압해온 것이다. 타인의 감정과 욕구에 접촉해 있느라, 자신의 화와 욕구는 인식되지 못한 채 억압되는 것이다.
"화가 적절하게 전개되려면 생체는 위협과 비 위협을 구분해야 한다. 이때 꼭 해야 할 구분이 자기와 비(非)자기의 구분이다. 만약 자신의 영역 경계선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 지를 모른다면, 나는 어떠한 잠재적 위험이 경계선 안을 침범해도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친숙한 것과 낯선 것. 또는 유익한 것과 유해한 것 사이의 필수적인 구분은 자기와 비 자기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요구한다. 화는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을 식별하는 일과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일 모두를 의미한다. 면역계가 수행하는 가장 첫 번째 임무도 자기와 비 자기를 구분하는 것이다."
면역계가 몸속에 자신의 것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시작하면, 외부 유해물질뿐만 아니라 자신의 것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면역계 질병들이 있는데, 내가 아는 것 중에는 류머티즘 관절염, 아토피 등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면역과 감정이 분담하는 다음 세 가지 기능을 언급한다. (1) 비 자기의 인식과 동시에 일어나는 자기 '인식'기능, (2) 유익한 유입 물질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기능, (3) 위험요인을 제약하고 제거하는 능력과 함께, 삶을 고양시키는 영향은 수용하는 기능이다.
우리의 감정도 자신의 것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 악화된 상태에 대해 자신을 탓하는 식으로 결국 감정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 저자는 "믿음의 생물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가 감정적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말들을 예로 들었다.
<믿음의 생물학>
1) 나는 강해야 해.
2) 화를 내는 건 내게 옳은 일이 아니야.
3) 만약 내가 화를 낸다면, 사랑스러운 사람이 못 될 거야.
4) 내가 온 세상을 다 책임져야 해.
5) 나는 무슨 일이든 처리할 수 있어.
6) 나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아. -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야.
7) 나는 뭔가 일을 안 하면 존재하지 않아.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해.
8)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으려면 몸이 아주 아파야 해.
우리는 모두 화가 날 만한 일에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화를 냈다고 해서, 우리는 언제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화를 낼 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다 내 책임인 일은 없으므로, 온 세상 일을 다 내가 책임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마냥 강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아주 아프지 않아도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책은 감정을 억압하는 일이 어떻게 신체화 증상을 가져오는지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간관계의 경계선을 지키는 것을 면역계에 비유한 부분이 정말 좋아서 눈이 새롭게 뜨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위의 내용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덜 좌절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믿음의 생물학" 부분을 기억하면서, 나 자신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그리고 좀 더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