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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Aug 14. 2024

친구 별이 단짝단짝 빛날 때

현아는 나의 소꿉친구. 지금까지 가까스로 연락이 닿는 가장 어릴 때 친구다.

4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단짝이 되었다.  6학년 또다시 같은 반이 되어 단짝단짝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둘 다 내향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외향인들이 주로 하는 바깥놀이보다는 내향인들이 즐겨하던 공기놀이를 좋아했다.

또한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비등비등한 공기 실력 덕분이었다.

한쪽이 월등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루풀타임의 공기게임을 치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부는 늘 엎치락뒤치락,  계속 이어지는  게임포인트, 결과는 늘 짜릿했다.

우리를 갈라놓은 건 졸업과 각기 다른 중학교 배정이었다.

현아라는 단짝 친구 덕분에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단짠단짠.

그래서 행복했다.


별이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나는 별이에게 꼭 만들어주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로 친구였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나에게도 별이에게도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별이에게 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현아는 내 친구 현아가 아니다.

거짓말처럼 별이의 초등학교 첫 친구 이름도 현아였다.

8살이 되던 해, 별이는 집 근처에 있는 일반 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에는 통합교육(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받는 교육)이 대세인 지라 특수학교로 입학시키면 마치 장애 자녀를 포기한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였다. 그 당시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말도 못 하는 애를 어떻게 학교에 보내지?' '시골 분교로 입학시킬까?' '교실에서 착석은 될까? '

'놀림이나 당하면 어떡하지?'

고민이 하늘의 별보다 많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더 이상 유예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라에서 가라는 학교,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놀림당할 거라면, 동생에게 당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별이에게  같은 나이, 같은 동네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걱정을 책가방처럼 짊어지고 입학했다.

1학년 2반 배정.

열정 가득했던 특수교사 선생님.

정의로운 여자 담임선생님,

일단 첫 단추가 좋았다.

그리고 친구 현아,

거짓말처럼  친구 이름과 똑 닮은 현아가 우리 별이의 학급 내 지킴이가 되어주었다.

작지만 강단 있는 아이, 눈이 반짝이던 아이, 의젓함이 있는 아이, 늘 아이들이 따르는 아이였다. 외향적이면서도 속이 꽉 찬 아이였다.

그 아이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는지 담임선생님의 배려와 당부가 있었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현아는 별이 근처에 앉아, 자꾸 어디론가 뛰쳐나가려는 별이를, 자꾸 일어서려는 별이를. 화장실 가려는 별이를, 옆에서 기꺼이 잡아주고 도와주는 언니 같은 친구가 되었다. 

더 다행인 건 그 아이의 리더십이었다.

현아의 주변에는 아이들이 늘 따랐으니, 현아가 별이 곁에 있으면 서너 명의 아이들이 별이를 함께 지켜주었다.

별이를 따라 우르르 몰려다녔다. 일종의 그들만의 '지킴이 놀이' 같기도 했다.

동생 같은 별이를 반 친구들이 돌봐준 덕분에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

2학년에도 고맙게 또 같은 반이 되었다.

현아는 반장이 되었다. 반장이 함부로 하지 않는 별이를 다른 아이들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금상첨화로 별이의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엄마, 아빠, 할무니, 하부지 정도밖에 하지 못했던 별이가 선생님, 연필, 공책, 친구 이름, 풍선 등등 발화 어휘가 늘어났다.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어디가', '연필 어디 있니'. '지우개 어디 숨었니'.. 또렷하지 않지만 어색한 억양이지만, 꽁꽁 닫혀있던 별이의 언어의 세계가 열리던 순간이었다.


아이는 아이들 틈에서 배우고 자란다는 말이 맞았다. 관찰자로서의 별이는 나름 주변  친구들의 행동과 언어를 배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다.


이게 모두, 현아와 반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 보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간식과 친절이었다. 떡, 음료수, 반 전체를 초대한 별이의 시끌벅적한 생일파티. 마치 전교 1등 엄마의 신바람 난 치맛바람처럼  장애학생의 엄마인 나의 치맛바람도 참으로 유난스러웠다.  

그런데 그것도 딱 2학년 때까지였다.


3학년이 되자, 아이들은 상상 이상으로 빨리 자랐다. 2학년과 3학년 학년이 붙여준 계급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현아도 더 이상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별이의 존재가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별이의 외로움이 점점 커졌다. 한계가 다다르고 있었다. 아침마다 등교를 시켜주고 출근하던 남편은 나보다 더 빨리 별이의 외로움을 알아차렸다. 특수학교로 전학 갈 시기가 온 것 같았다.


별이가 학교를 떠나는 마지막 날, 현아와 친구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별이를 사랑하던 특수교사 선생님은 더 많이 오래오래 아파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마지막 선물로 반아이들에게 쪽지를 쓰게 했다.

'지수야, 더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 '너네 집에서 한 생일파티 너무 재미있었다' '다음에 학교에 놀러 와' 등등 다양한 메시지들이 담겨있었다.

별이는 정말 딱 좋을 때 헤어졌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 전에 헤어졌다. 별이가 전학을 가고, 그 학년에는 더 이상 장애인 친구가 없었으니, 그들에게 별이는 마지막 장애인 친구였으며, 별이에게 그들은 놀이의 즐거움을 나눠주고, 언어의 욕구를  일깨워준  소중한 비장애인 친구였다.


지금도 나는 별이에게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외로울 때는 전화라도 할 수 있는 친구
아무 때나 카톡을 주고받는 친구
사소한 짜증을 풀 수 있는 친구
새로 산 옷과 화장품을 자랑할 수 있는 친구
좋아하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시며 실컷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별이에게 그런 친구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밖에 없다는 것이 는 참 미안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 자라지고 말고, 더 찌들지도 말고, 꼭 별이만큼만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별이의 마음높이에 맞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야지.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옆에서 단짝단짝 붙어  있어야지.


Epilog.


생각해 보니 현아에게 내가 많이 고마웠다는 인사를 미처 하지 못했다.

나의 에필로그는 24살이 된  9살 현아에게 쓰는 짧은 감사 편지다.


현아야, 2년 동안 우리 별이 챙기느냐고  고생 많았지?

그때 아줌마 근심은 온통 별이 뿐이어서

별이를 챙기던 네가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거 같아

네가 계속 고마운 친구로 남아주기를 바랐던  같구나.

가끔 동네에서 아는 엄마를 만나면, 너의 안부를 묻곤 했었어.

공부도 잘하고 여전히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했는데 고학년이 되어 서울로 이사 갔다고 하더구나.

24살의 현아는 대학생이 되었을까? 졸업은 했을까?

너의 어릴 때 심성처럼 밝고 리더십 있고,

낮고 아픈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는 그런 청년으로 성장했을 거라고

아줌마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수도 많이 컸어.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너의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단다

네가 예쁘게 잘살고 있을 거라고 하던걸?

현아야~그 시절 지수의 친구가 되어주어 너무너무 고마웠어

잊지않을게

건강하렴. 그리고 행복하렴


      *너에 대한 고마움을 품고 사는 별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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