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왕과 왕비가 살았다. 날마다 예쁜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드디어 오래 기다렸던 예쁜 공주님이 태어났다. 너무나 기뻐서 그 나라의 모든 요정들을 초대해 축하 파티를 열었다. 요정들은 차례대로 공주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건넸다. 그런데 마지막 파티가 끝날 때쯤초대받지 못한 요정이 찾아와 저주의 마법을 퍼부었다. 공주가 16살 되는 해에 물레 바늘에 찔려 죽을 거라고 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중 일부 요약>
'저주'라는 마법이 풀리는 순간
별이는 생후 3개월에 고열로 입원했다. 뇌수막염이었다. 일주일 간의 입원. 아이는 밤새 울어댔다. 6인용 병실에서 그것은 민폐였다. 남편과 잠을 교대로 자며, 병원 복도에서 별이를 달랬다. 그리고 다음 날, 친정부모님께 병실을 맡기고 각자의 일터로 출근했다. 이십 대 후반의 젊은 부부는 그 일주일이 인생 최대의 고비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국지성 호우에불과했다.
먼바다로부터 태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젊은 부부의 인생을 휩쓸고 갈 별이 1호 태풍. 원래 태풍의 이름은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지어예쁘고 고요한것이라했다.
퇴원하는 전날, 마지막 진료로담당 과장님을 만났다.
과장님은 간단한 견인반응검사를 했다. 견인 반응이라 함은 아이의 팔을 들어 올리면 목이 따라와야 하는데 별이의 목은 힘을 쓰지 못한 채 뒤로 젖혀져 있었다.
그리고는 매우 권위적이고 이성적이고 냉담한 목소리로 뇌성마비를 예고했다.
"아이가 뇌성마비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저주였다.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 퍼붓는 저주 같았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소견이었으나, 적어도 그날 우리 부부에게는 저주나 다름없었다. 양가 부모님은 돌팔이라 했다. 애가 겨우 고열을 이겨냈는데, 힘이 어디 있냐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병원을 바꿨다. 장애진단명만 달랐을 뿐 장애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곳 의사는 별이의 지능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뚜렷하지 않겠지만 자라면서 점점 체감할 것이라고 했다. 받아들였다. 특수치료에 전념했다. 매달 들어가는 특수치료비가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별이 태아보험 약관을 보게 되었다.뇌성마비 진단비.
그러나 다니고 있던 병원에서 내 준 진단은 정신지체였다. 해당되지 않았다. 엄마인 나의 소견으로는 지능만의 문제로 보기에는 소근육, 대근육 발달이 모두 정상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동네 소아과, 정형외과 의사들도 살짝 뇌성마비 증세가 있는 거 같다고 했다. 그러나 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은 대학병원 의사 진단서였다.
다니는 대형병원에서는 뇌성마비로 진단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본인의 첫 진단이 맞다고 했다. 마치 나를 보험금에 눈이 먼 엄마로 보는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는 건 내 자격지심이었다. 다른 대학병원도 찾아갔다. 별이를 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혹시 어느 병원, 어느 교수에게 진단을 받았냐고 물었다. 나의 답을 듣자, 본인도 그 진단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단념과 체념. 더 이상 더 가볼 병원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별이가 11살이 되던 해였다. 키가 자랄수록 신체의 움직임이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자꾸 넘어졌다. 그날도 집 마당에서 넘어져서 119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하필 가고 싶지 않았던, 내게 상처로 남아있던 그 병원이었다.
문득, 그 병원의 과장님이 생각났다. 그 권위적이고도 냉담했던 말이 볼륨없는 스피커를 통해 울려댔다.
다시 찾아가 볼까? 또 상처받으면 어쩌지?
안되면 말고, 밑져야 본전이지.
다행히 과장님은 그 병원에 계셨다. 여전히 소아과는 2층, 저 복도 끝. 별이 차례가 되었다. 큰 숨을 몰아 쉬고, 과장님이 계신진료실 문을열었다.
어? 어?
이상했다.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 같던 모습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10년 전이지만, 내가 그 얼굴을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그러나 지금 앉아계신 분은 몸은 야위었고 냉정함과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나의 비장함은 단박에 무너졌다.
생후 3개월에 내리신 과장님의 진단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뵙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그 진단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는 그 진단에 해당되는 보험금이 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진단을 내주지 않습니다.
마치 고해성사 같았다.
그 모든 말을 듣고는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나와 아이에 대한 연민이었는지, 본인 진단에 대해 자부심이었는지.
엄마가 많이 힘들었겠다고 했다. 본인으로서는 왜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안 해주셨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진단을 내줄 수가 있지만, 아마도 보험회사의 절차상 검사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환자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았다. 뇌 MRI와 뇌파검사를 받자고 했다. 그런 후에 진단을 내주시겠다고 했다.
10년 전, 아이의 장애명부터 냉담하게 들이밀었던 그분이 아니었다. 세심하고 친절했다.10년 동안 마음속에 밀봉되어 있던 '저주'라는 마법이풀렸다.
검사를 받는 과정 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느낌처럼과장님은 위중한 병에걸리신상태였다.병가와 휴직을 반복하시다가 환자들을 위해 잠시, 아주 잠시 진료를 보시는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