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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Aug 21. 2024

너의 마알간 말이 좋아서

'마알간 영혼 이지수' 연재가 어느새 7화까지 오게 되었다.

연재명에 아이의 실명을 넣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동안 지인들에게 아이의 장애를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모르는 사이'라는 익명성 덕분일까?

매 연재 때마다 내 마음 깊숙이 봉인되었던 이야기상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나의 오랜 친구도 그간 몰랐던 내 마음을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새 '모르는 사이'였던 브런치 이웃들이 점점 '아는 사이'가 되어 갔다.

말로 했으면 서걱서걱했을 고백들이 글로 하니 맨들맨들하니 좋았다.

그렇게 7화까지 오게 되었다.

잠깐의 인터미션이 필요한 시간,

잠깐의 막간, 잠깐의 쉼처럼

이번 스토리는 아주 가볍게

지난 며칠간 딸과 나눴던  마알간 말, 마알간 수다로 준비했다.

 

너의 마알간 말이 좋아서


8월 12일 월요일

왕십리에 있는 장애인 치과 병원을 가는 길이다.

몇 년 전 사랑니 수술을 하고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다니고 있다.

"지수야, 사랑니 뽑았을 때 어땠어?"

"아팠는데, 시원했어"

"근데, 사랑니는 왜 사랑니일까"

...

한동안 말이 없다.

"내 첫사랑이 안주형이었잖아, 근데 결별했잖아. 사랑니도 나랑 헤어진 거지 모"

마치 딴소리를 하는 거 같았지만, 어렴풋이 아는 것 같았다.

사랑니도 첫사랑도 그 끝은 결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아픔이 오래 기억난다는 사실을.

안주형은 특수학교에서 만난 남자아이였다.

지수보다 장애 상태가 매우 좋은 아이였다.

우리 지수의 잠바 지퍼를 올려주는 걸 나도 본 적이 있다.

지수의 첫사랑이었다.


8월 15일 목요일

아침부터 잔뜩 방안에 물티슈가 널려져 있다.

순간, 나는 짜증이 났다. 날씨도 더운 터라 더 그랬다.

"지수야, 너 방이 이게 뭐야?"

말이 이쁘게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인형 씻겨줬어. 인형도 더울 거 아냐. 시원하게 씻겨준 거야"

그러고 보니, 인형 몇 개가 축축한 채로 침대 위에 올려져 있다.

물티슈로 인형을 씻겼더니, 힘들고 덥다고 에어컨을 틀고 침대에 큰 대자로 눕는다.

아기 키우기 힘들다며, 본인은 노처녀로 살겠다고 중얼거린다.

어쩌면 좋으랴 너의 그 아기 같은 그 마음을.


8월 16일 금요일

주간보호센터 재능 봉사 선생님들과 만든 수제 부채가 망가졌다.

"엄마, 부채  하늘나라 쓰레기통으로 보냈어"

"그래서 슬퍼?"

"괜찮아 부채는 천국 갔겠지 뭐"

"부채가 천국 간 걸 어떻게 알아?"

"그동안 나를 시원하게 해 줬잖아."

지수는 늘 물건을 버릴 때, 아쉬워하며 고마워한다.

그렇다고 아껴서 쓰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빨을 닦을 때도 잘근잘근 씹어 2주를 버티지 못하는

칫솔을 버릴 때도 그랬다.

고마웠다. 잘 가라. 아프게 해서 미안했다.

그렇게 말했다.


8월 18일 일요일

하이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남편은 아쉽게도 둘째 학원 픽업 때문에 마시지 못했다.

내가 무척 아쉬워하자, 지수가 나선다.

"엄마, 나랑 마시자. 나도 이제 술 마실 나이잖아"

"그럴까? 엄마 아빠 니 나이 때는 하이볼 한잔 이 뭐냐 맥주 만CC, 소주 몇 병은 아주 우스웠지"

남편이 위스키 몇 방울을 아이의 하이볼에 탔다.

홀라당 홀라당 잘도 마신다. 아주 맛있단다.

"아빠 대단해, 이렇게 맛있는 걸 자식을 위해서  못 마시는 거잖아"

너 지금, 입맛 다시고 있는 아빠 마음을 알아준 거니?

우리 지수의 말은 토닉워터 같다.



Epilog.


여전히 나는 딸의 목욕 담당이다.

혼자서는 말갛게 씻기 힘들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생각했다.

나는 딸의 육체를 씻기지만

나의 영혼을 씻기는 건 언제나 딸이었다.

마알간 말로

마알간 생각으로

마알간 몸짓으로

'마알간 영혼 이지수'

그렇게 나를 말갛게 씻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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