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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Sep 04. 2024

할머니, 하늘나라 여행은 가지 마세요


큰 딸이 첫 딸을 낳았다.

태명은 별이, 이름은 지수라고 지었단다.

별 두 개가 얼굴에 콕 박혀 반짝반짝 빛났다.

얼마 전 그 핏덩이가 열이 끓어 입원을 했단다.

열이 내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의사들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

딸은 허구한 날 운다.

이게 뭔 일이래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내 딸이 슬픔에 갇혀 사는 건 죽어도 못 보겠다.


         <별이를 키울 할머니의 결심>


세 모녀의 지구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동생까지 대학생이 되자, 엄마는 학교 급식실에 취업을 했다.

급식이 도입되던 초창기였다.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온 엄마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가족들의 예언과 달리 7년을 버티셨다.

매일 무거운 국통과 밥통을 드는 것을 힘들어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고 매일 파스를 붙이셨다. 엄마는 폐경기였다.

나는 엄마가 급식실에서 일을 하느니, 차라리 손녀딸을 돌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별이가 진짜 장애인이 될 줄은.

조금 느린 아이라도 젊은 외할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할머니 손은 약손이었으므로 다른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금세 따라잡을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조기교육'을 시키라고 했다

조기교육이라면 마치 교육열에 불타는 엄마들이나 하는 선행학습처럼 들리겠지만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 일찍 시키는 교육도 '조기교육'이라고 불렀다.

별이가 받던 조기교육은 주 2회 장애인복지관 조기교실, 언어치료, 놀이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통합감각치료였다.

어떤 날은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들었다.

나, 남편, 친정 아빠가 쉬는 날이 아니면

엄마는 별이를 둘러업고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냥 걷게 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 균형도 잘 잡지 못하는 애를 어떻게 걷게 하냐는 것이 이유였다.

그날도 치료를 가던 날이었다.

마을버스를 탔는데 큰 사거리에서 기사님이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끽~

곧 내리려고 대기 중이던 별이를 업고 있던 엄마는 그만 손잡이를 놓쳤다.

별이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바닥에 온몸을 던졌다.

다행히 버스 맨 앞 계단까지는 떨어지지 않았으나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

급식실 수백 인분의 국통과 밥통보다 별이를 키우는 무게가 더 무거웠다.


엄마는 점점 정보통이 되어갔다.

치료실 학부모 대기실은 학원가 커피숍과 다르지 않았다.

누구 엄마가 그러는데, 어느 언어치료실을 다니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대

어느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걸었대

엄마들끼리 오가는 치료 정보들을 듣고서는 나한테 전달했다.

열혈 할머니였다. 가끔은 날이 선 투사 같았다.

어느 날 나와 엄마, 별이가 백화점 쇼핑을 하던 때였다.  

새로 간 통합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났다. 친구와 함께 온 모양이다.

우리는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우리가 누구냐고 묻는 모양이다.

"새로 생긴 장애인 반 애야"

엄마가 그 소리를 들었다. 물론 나도 들었다.

뭐, 장애인반?

엄마는 화가 많이 나셨다. 밤새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장애인 반이라니. 나는 엄마에게 그냥 넘어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참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어린이집을 가서 원장님께 항의를 했다

우리 아이들 사랑으로 교육하려고 '사랑반'이라고 지은 거 아닙니까

장애인반이라니요. 이게 무슨 통합교육입니까

할머니의 항의는 거셌다. 우리 엄마는 그런 할머니였다.


그랬던 엄마가 나와 별이를 한 순간에 끊어냈다.

별이가 7살이 되던 해였다. 내  여동생이 딸을 낳았다. 나에게는 첫 조카였다.

엄마에게는 두 번째 손녀딸이었다. 엄마는 이제 동생네 딸을 봐줘야 한다고 했다.

자식이 나 하나가 아니었으므로 당연했다.

그런데 갑자기 냉정해진 엄마의 말이 서운했다.

나 역시 회사-친정-시댁을 오가며 한시도 편한 날을 보낸 적이 없었으니

내가 풀어낼 곳은 엄마 품 밖에 없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그동안 쌓였던 서운한 감정들을

양궁장의 화살처럼 쏟아냈다

오래된 마음 과녁을 향해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명중시켰다.

내가 10점을 쏘면, 엄마도 바로 10점을 쐈다.

슬픔이 팽팽히 대결하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을 계속했다.

그렇게 울면서 친정집을 나왔다.

동생이 낳은 조카는 별이와 다르게 할머니 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잘 자라는 손녀딸의 성장이 엄마도 기뻤던 모양이다.

가끔 통화를 하면 벌써 일어나 앉는다. 말을 한다. 노래를 한다

자랑이 늘어지셨다. 나 역시 조카의 정상적인 성장이 누구보다 기뻤음에도

엄마의 그런 모습이 가끔은 서운했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나는 엄마를 찾았다.

성인이 된 별이를 주말에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어릴 때처럼 치료를 다닐 일도, 밥을 먹여줄 일도 없었으나 누군가 옆에는 있어야 했다.

물론 요즘 같이 스마트한 대에 부모님에게도 내가 필요했다.

또한 일손을 놓은 부모님께 나는 경제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일주일의 반은 서울 집에서 일주일의 반은 우리 집에서 지내신다.

집 앞 텃밭에서 친정부모님은 소일거리로 농사를 지으신다.

아직은 초보 농사꾼이다.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옥수수가 자란다.

손이 갈수록 잘 자라는 농작물 덕에 늘 바쁘지만

여전히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농사는 손녀딸 농사였다.



Epilog.


엄마가 지수에게 편지를 썼다.

정작 지수는 글을 몰랐으므로

세 모녀의 편지 낭송회가 열렸다.

읽는 사람도, 쓴 사람도 눈물샘이 터졌다.

정작, 지수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 손을 잡는다

말을 한다.


"할머니 하늘나라 여행은 가지 마세요"


지수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쓴 편지에서 긴 여행의 의미를.


사랑스러운 나의 손녀 지수에게

벌써 우리 지수가 스물세 살이 되었네
오늘은 할머니가 우리 손녀에게 몇 자 적어 나의 마음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랑하는 우리 지수야 할머니는 지금 생각하면 힘들 때도 많았지만 기쁨을 주기도 했지
네가 태어날 때 기뻤고, 그런데 병원에서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는 믿기지를 않았단다.
너의 엄마 아빠만 했겠나 만은 할머니 마음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단다.
의사 선생님이 조기 교육 시키라고 할 때는 교육시키면 괜찮을 줄만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그래도 할머니는 기쁠 때가 있었단다
네가 세 살 때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할 때 어느 주말에 지수가 할머니 집에 온다고 할 때
마중을 나갔는데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걸어오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반가운지 눈물이 나더라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단다.
너를 데리고 작업치료 음악 미술 언어 어린이집을 업고 다녀도 차도가 없어서 실망도 했지만
할머니는 희망을 갖고 키웠다.
하늘이 내려주신 천사라고 생각했단다.
지금은 정상인만큼 생활이 안 돼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할머니는 정말 흐뭇하단다.
어느 때는 지수가 뜬금없이 하는 말이 너무 웃겨서 우리 집에 행복 바이러스야
지수야 더도 말고 지금처럼 건강하고
아이참, 할아버지 이야기 좀 해야지 네가 이만큼 성장함에 있어 할아버지에 사랑도 컸단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야 지수야 할머니는 지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거란다.
우리 지수를 두고 긴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벌써 아려온단다.
지수야 지금처럼 건강하게 우리 함께 행복하게 살자
지수야 오늘 할머니가 처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쓰네 지수야 사랑해
지수야 너도 할머니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렴
     
                                                                                   사랑하는 지수에게 할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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