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송이 Sep 18. 2024

너는 나의 보름딸

내 팔뚝에는 보름달처럼 큰 점이 있다.

어릴 때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던,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나의 씨점.

아장아장 걸을 때는 딸기씨,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는 사과씨만 하더니

결국 수박씨 크기로 자라 내 팔뚝에 붙어있다.


계절이 늦봄에 이르면 나는 그 점을 감추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했다.

반창고로 붙여볼까? 매일 1mm씩 칼로 긁어낼까? 할머니한테 빼달라고 할까?

그러나 답은 없었다.

계절이 여름에 이르고 반팔을 입게 되자

나의 점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웬일이니~ 파리똥'  

 시대의 유치한 팝과 아재의 콜라보를 부르며 놀려댔고

또 몇몇은 '점 봐라, 점순이'이라고 대놓고 놀렸다.

며칠만 견디자. 바보같이 아무 말 못 하고 속으로만 앓았다.




회사를 이직하고 보름쯤 지났는데 덜컥 임신 소식을 알았다.

어쩌지? 어떻게 말하지? 지난번 사장님과의 점심미팅에서 사장님은 내가 미혼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이력서에서도 면접에서도 내가 기혼자임을 적는 란과 질문은 없었다.

나는 당분간 임신을 감추기 위해, 회식도,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입덧이었다. 가장 싫은 건 밥냄새, 반찬냄새였다.

그날도 야근. 17층 식당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울렁이는 밥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욱~' 나는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후 나는 나의 임신을 밝혀야 했다.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몇 달간의 공백을 근심하는 상사의 얼굴을 보았다.




명절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6촌 중에는 별이 또래의 아이들이 줄줄이 있었다.

명절 날 보는 아이들은 매번 자라 있었다.

기던 아이가 다음 명절에 보면 걸었고 걷던 아이가 다음 명절에는 뛰어다녔다.

엄마 밖에 못하던 아이가 다음 명절에는 밥 달라, 국 달라, 쉬 마렵다

온갖 칭얼거리는 말로 엄마를 바쁘게 했다. 아니 내게는 기쁘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해 명절.  

"엄마 바본가 봐"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지만 미웠다. 그 자리에서 혼내지 않았던 아이 엄마는 더 미웠다.

그날 이후부터였을까?

나는 명절이 두려웠고, 별이를 치마폭에 감추기 위에 바빴다. 

또래에 맞지 않는 별이의 행동들을 감추기 위해  

나의 레이더망은 추석 차례상만큼이나 별이를 향해 있었다.

물론, 아무도 우리 별이를 멸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따뜻했고 측은해하였다.



 

올해 추석날 아침.

여전히 지수의 행동은 조용한 차례의식 속에서도 눈에 띈다.

아무도 특별한 시선으로 지수를 바라보지 않는다.

나도 더 이상 지수를 치마폭에 감추려 하지 않는다.

민망함과 송구함.

아빠 옆에서 잔이라도 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여전히 생겨난다. 어쩔 수 없다. 내 소중한 감정의 일부다.

내게 생겨나는 무수한 감정들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감추고 싶었던 완전하지 않은 나의 삶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이는 순간, 채워지는 것이니

원래 불완전한 나의 삶이 지수로 인해 점점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채워지고 있다.

보름달이 되어가고 있다.


유난히 밝은 보름달. 2024. 9.17 10시 촬영사진  

Epilog


딸,

오늘은 너를 달이라 부를게

늘 부족했던 반에 반쪽 같던 엄마가

매일매일 너로 인해

조금씩 채워지고 있으니

너를 달이라 부를게

보름달보다 환한 빛으로

감추고 싶은 두려움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있으니

너는 나의 예쁜

너는 나의 완전한

너는 나의 소중한

보름달


너는 나의 보름딸




이전 10화 바람이 부는 날 둥우리를 지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