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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Oct 30. 2024

오십 동심은 노망인가 로망인가

[프롤로그] 나는 당분간 오린이로 살기로 했다.

오십 어린이, 오린이

로운 연재명을 짓기 위해  머리 회전 속도가

지구본 돌아가는 속도보다 빨랐던 날이었다

갑자기 탁! 치며 지구본 지축을 멈추게  하는 단어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오린이'였다


'오린이, 오린이 '몇 번을 입에서 조물조물거렸다.

오물오물 귀여운 것이 일단 어감은 합격이었다. 그럼 이제 오린이에 '동심 체험하기'라는 궁극적 목적 붙여볼까?

동심 세상? 동심 세계? 어떤 게 좋을까? 세상은 너무 맑은 느낌인지라 약간의 음탕함을 넣어도 가능할 것 같은 세계로 정했다.

해맑게 자란 부잣집 외동딸처럼'오린이의  동심세계'라는 브런치 연재명은 순조롭게 탄생했다.



오십은 내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나이였다.


나는 사십 대가 좋았다. 고단스러웠던 삼십 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죽을 뻔했던 병을 운 좋게 조기발견했고 둘째의 평범한 성장도 행복에 한 몫했다.  어렵다던 사기업에서 공기업 갈아타기도 성공했다.

이 좋은 세월을 오십에게 내어주기가 싫었다.

가뜩이나 울적한데 나와 동갑내기 동료는 이미 작년에 폐경과 동시에 갱년기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과연 내  몸속 난자들은 몇 개나 남아있을까?

잠이 안 오는 날에는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난자들을 상상하며 세보기도 했다.

'난자 헤이는 밤'의 연속이었다.


그런 오십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독서를 선택했다.


오지게 재밌게 나이 듦(김태환 저, 북하우스)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문하연 저, 평단)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이주희 저, 청림)
나는 나답게 나이 들기로 했다(이현수 저, 수카)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김원국 저, 웅진지식하우스)
50,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오세욱 저, 페이퍼버드)
다산의 평정심 공부(진규동 저, 베가북스)
오십에 읽는 논어(최종엽 저, 유노북스)


2년이 지났다.

누가 오십을 지천명이라 했는가.

그 많은 책을 읽고도

하늘의 명령을 알아차리기는커녕, 사춘기 딸의 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오십이 되고 말았다.

결코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유치했고, 미성숙했고, 가끔 못되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가 더 착했다.

개발도상국 시대 서울변두리.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몸을 써야 가족을 먹여 살리던 도시노동자 아버지를 둔  2녀 1남의 큰딸로 태어났다.

9살, 귀한 남동생을 얻었을 때는 집에 있는 전화번호부 수첩을 찾아서

우리 엄마 아들 낳았다며, 친척과 이웃들에게 엄마의 득남 소식을 대신 전할만큼 어른스러웠다.

코우유, 초콜릿은 먹어보지도 못했다. 당연히 남동생 거였다.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소풍에 싸가지고 간 과자 초콜릿도 먹지 않고 남겨왔다.

동생들을 주고 싶어서였다.

반장 후보에 나가도 내 이름도 쓰지 못해 결국 0표를 얻은 그런 바보 같은 아이였다.


사실 그건 착하다기보다 그 흔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가까웠다.


이번 연재를 통해 용기 없던, 착하기만 했던 내 안의 어린이에게 동심을 선물할 생각이다.

더 늦기 전에 어릴 때 누리지 못한 동심을 실컷 누려보게 하려 한다.

꿈꿨으나 이루지 못한, 해봤으나 살짝 아쉬운 동심 리스트을 적어 보았다.


- 만화 주인공 캐릭터 이름으로 살아보기.

- 48색 색연필, 크레파스 갖기

- 내가 좋아하는 만두 실컷 먹기

- 삼중당문고 전집 사기

- 예쁜 엽서 편지지 모으기

- 엄마한테 졸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생일상 받아보기

- 친구 초대해서 떡볶이 파티 하기

- 외동딸 되기  (사랑하는 동생들사망처리 할 수 없으니 실현불가능)

- 학교 땡땡이치기

- 엄마 눈치 안 보고 뽑기 하기

- 눈치 안보며 속마음 말하기

- 병아리 키우기 (이건 지금 생각해도 무모함)

- 살찌기 (이미 찌는 체질로 체질 전환함)

- 엄마가 가지 말라는 골목이나 낯선 동네 탐험하기

- 동생처럼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자기(왜 하고 싶었는지  감정 정리 중, 잠시 보류)

- 공부 안 하고도 시험 올백 맞기(딸이 따라 할까 봐 절대 안 함)


적는 내내 재밌겠다. 요건 이렇게 바꿔봐야지 아이디어가 퐁퐁퐁 샘솟았다.

물론 예상되는 난관도 어마어마했다.

우선 돈. 체험하려면 돈이 좀 들 것이다.

을 쓰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2배  더 들 것 같다. 체험까지 해야 하니까 말이다.

브런치 구독자도 떨어질 것도 같다.

동심이 아니라 오십 아줌마의 똥심이라 생각할 독자의 탈구독을 어찌 막겠는가.

무엇보다 가걱정되는 건 주변사람들의 반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 나는 세리야 요술공주 세리, 그러니 나를 세리라 불러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뭐라 할까?

갱년기 건너뛰고 바로 치매로 직행할 셈이냐며

노망 난 오십 취급이나 하지 않을까?

이건 노망이 아니라 로망이다.

동심의 로망이다.

'오린이의 동심세계'는 체얼리즘 에세이다.

그러니 모두들 연재를 하는 몇 달은 이 오린이를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들에게 부탁한다.

특히 둘째 딸 잘 듣거라

엄마는 지금부터 치킨 다리를 양보하지 않겠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선택권도 양보하지 않겠다.

로제떡볶이도 안 시켜줄 생각이다.

엄마는 원래부터 그냥 고추장 떡볶이 파였다.


엄마도 잘 들으세요.

갈비뼈 붙으실 때까지만 착한 딸이 될게요. 갈비뼈 붙고 나면  친구들 초대해서 떡볶이 파티 해주세요. 저 백설기 싫었고요 초콜릿케이크에 돈가스 튀겨서 생일상 차려주세요


남편 나 돈 좀 땡겨줘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절판된 동화책도 사야 하고  굿즈 이런 것도 사모을 예정이거든. 연차수당 받음 갚을께


철딱서니 없다.

속닥거려도 눈치 보지 않겠다.

괜찮은 척

어른인 척하지 않겠다.

당분간 나는 오린이로 살기로 했다.




P.S

혹여, '오린이'라는 말이 이미 세상에 있는 말은 아닐까 급우려되어 검색 엔진을 돌려봤다. '오린이'가 있긴 하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종합 게임 스트리머다. 그러나 닉네임의 뜻이 오버워치와 어린이를 결합한 말이란다.  휴우  다행이다. 하마터면 초장부터 꼬일 뻔했다. 아울러 구독자들의 동심  아이디어도 구해본다. 괜찮은 동심이 있다면 동심체험대행도 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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