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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Nov 20. 2024

ㅅㅅㄹ, 1982년 살생의 추억

못된 동심도 동심이다!

세상에 착한 동심만 있는가? 못된 동심도 있다.

내 안의 오린이도 마찬가지다.

이번 동심 세계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죽인 끔찍한 사건이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죽였을까? 초성힌트는 ㅅㅅㄹ!


때는 1982년 7월과 8월 사이의 긴 여름방학.

경기도 광주시 양벌리, 어느 시냇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생과 나는 방학이면 어김없이 시골 외갓집에 맡겨진 '맡겨진 소녀'가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방학맞이 시골 체험이었나, 실질적으로는 엄마의 방학 돌봄 해방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가 우리를 외갓집에 보낼 때면 당시 시장표 명품 브랜드였던 서울원아동복이나 부르뎅 아동복을 입혀 보냈다. 우리 자매가 외갓집에 떴다 하면  이웃의 소년들은 죄다 모였다. 하얀 프릴이 어깨에 잔뜩 잡힌 원피스를 입은 우리는 시골에서 보기 드문 패셔니스타였다.

외갓집 근처에는 빨래터도 겸할 수 있던 작은 시냇가가 있었다.

우리는 소년들과 함께 작은 송사리를 잡았다.

소년들이 바위를 들어주면, 소녀들은 맑은 물을 두 손으로 재빠르게 움켜쥔다.

'잡았다! 송사리'

그렇게 한 나절 송사리를 잡으면 양동이에 제법 가득 찼다. 소년들은 함께 잡은 송사리를 통째로 소녀들에바쳤다.


송사리를 해맑게 받아 든 소녀들의 변심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다.

"언니, 송사리는 폐수에서는 살 수 없을까?"

 당시 소녀들은 학교에서 환경과 오염에 대해 배웠다. 문득 호기심에 빠진다. 

물고기들이 폐수를 만나면 정말 빨리 죽을까? 실험해 볼까? 그래도 진짜 죽으면 어뜨카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이 공존하는 밤이 이어진다.  

결국 악이 이겼다.

송사리가 있는 양동이에 퐁퐁 한 방울을 섞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만다

결과는 참혹했다. 몇 시간 만에 송사리 전부가 몰살된 것이다.

소녀들은 잘못을 뉘우쳤지만 울지는 않았다.

폐수에서 송사리는 살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송사리를 잡지 않았다.




요즘처럼 동심이 꼼틀거리는 날이면,

바위틈에서 꼼틀꼼틀 대던 송사리들이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우연일까? 하늘이 오린이에게 준 기회일까?

마침 큰딸이 다니는 복지관에서 복지재단의 후원을 받아  코엑스 아쿠아리움으로 현장 체험을 갔다.  보호자 동참이 필수였다.


역시, 아쿠아리움엔 오색창연한 빛깔의 오대양 물고기들이 다 모여있었다. 

저, 화려한 지느러미는 2024 F/W패션쇼인가? 

물고기  빛깔의 스카프 한 장을 목에 둘러봤으면 하는 물욕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이런 스카프 한장 갖고 싶다.


어디 그뿐인가? 만화 속 전속 악당 캐릭터인 전기뱀장어부터 입이 긴 백상어도 만났다. 

그러나 이제는 꼼짝없이 수족관에 갇힌 신세이니 악당 말년이 참 불쌍해 보였다.

써봐야 삼천 원. 잉어 물고기밥도 플렉스 했다. 

어, 그런데 이게 누구야?

너 송사리 아니니?

한국의 정원 코너에 송사리가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가장 시골스럽지만 여전히 재빠른 그것은 멸치가 아닌 분명 송사리였다.

더 이상 저 오린이에게는 절대 잡히지 않겠다는 건가? 어찌나 빠르던지 고개가 훽훽 돌아갔다.

어쨌거나 나의 퐁퐁 한 방울이 송사리 종족 전부를  몰살시키지는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송사리 살생 공소시효는 오늘로써 완전히 끝난 거 같았다.

마지막 오린이 동심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페이스페인팅이다.

마음 같아서는 송사리 마리를 그려 넣고 싶은데, 그건 도안에 없다 하니 파란 돌고래를 그려 넣었다.

고럼 고럼,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에 돌고래 하나쯤은 그려야 동심이지.

기왕이면 크게 그려주세요~

특별 주문을 넣는다.

만 원짜리 그림에 만 이천 원짜리 크기를 요구하는 게 영락없는 아줌마다.

다초점 안경을 벗는다. 

왼쪽 볼을 갖다 댄다.

간지럽다.


어떤 돌고래가 될까?

얼굴이 바다가 될까?

주름이 물결이 될까?

시냇가에 자라던 송사리들이 바다로 흘러갈 수 없었듯이 돌고래가 시냇가로 흘러들어 갈 수는 없겠지.

돌고래를 얼굴에 그린다고 내가 진짜 어린이가 될 수는 없겠지.

아무리 바람 같은 바람이 바람처럼 다림질을 잘한다 해도 물결 같은 주름은 펴지 못하겠지.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이 마음을 간질 간질하게 했다.


딸의 얼굴에는 흰돌고래를 그렸다.

모녀 얼굴에 돌고래 두 마리 완성.

그날 아쿠아리움에는 언제나 동심인 아가씨와 동심을 갖고 싶은 오린이, 돌고래 두 마리가 하루 종일 헤엄쳐 다녔다.




(에필로그)오린이의 동심 반성문


송사리야. 미안해~

퐁퐁 한 방울에

네가 그렇게 빨리 죽을 지는 몰랐어

물 위에 둥둥 떠있던 마지막 모습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났어

나 지금 벌 받는 건가?

그런데, 말이야

어차피 수돗물에서도 오래 살지는 못했을 거야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너희가 컸다면 뭐가 되었을까?

송사리는 커도 송사리인가?

그렇다면, 나는 부러워

늙지도, 자라지도 않으니까.

어린이도 크면 그냥 어린이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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