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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Dec 04. 2024

눈:물이 되었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눈이 왔다. 첫눈이었다. 펄펄 내리는 첫눈을 보고 있자니 '눈'이라는 동요가 생각났다. 환상적인 은유의 세계를 열어 준 첫 동요였다. 눈은 선녀들이 뿌려주는 하얀 솜.  눈은 메타포. 달달한 게 먹고 싶은 날 내리는 눈은 솜사탕. 어떤 날은 백설탕. 곧 비가 되는 날은 풍덩풍덩 슬픔에 빠졌다.


오늘 오린이의 동심세계는 눈. 눈. 눈, 눈이 왔어요.




6시 땡분 알람에 기상. 창밖을 바라본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였다. 아~ 묵념 같은 감상이 끝나면 더 이상 우리에겐 낭만 따윈 없다. 우리의 암호명은 남편은 넉가래, 나는 청빗자루. 첫눈 소탕작전 스타트! 현관 입구부터 쓸기 시작한다. 우리의 목표는 길목 확보.  비교적 평이한 코스가 끝나면, 언덕 코스에 진입한다. 언덕 코스가 위험한 것은 부상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넉가래로 진입로를 터주면, 나는 최대한 눈과 바닥이 엉겨 붙지 않게 청빗자루로 싹싹. 쓸어도 쓸어도 눈의 공격은 그칠 줄 모른다. 쏟아지는 눈 폭탄,  그때였다. 우찌끈. 퍽, 부상자 발생~ 부상자 발생. 20년 된 자두나무 굵은 줄기 하나가 전사했다. 개장을 덮쳤다. 왕왕, 멍멍, 놀란 개들이 날뛴다. 다행히 개집은 무사하다. 다만 내년 봄 자잘 자잘하게 피어날 흰 자두꽃 한 가지를 나는 잃었다. 내 슬픔도 날뛴다. 슬픔에 염화칼슘을 뿌린다. 팍팍 뿌린다. 온 세상이 백기로 항복. 우리가 진거야. 빗자루를 내려놓는다.


눈: 물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눈을 집안으로 들이기로 했다.  눈사람을 만든다. 아니 빚는다. 머리는 작게, 몸은 크게, 눈, 코, 입은 생략 할게. 그냥 온몸으로 보고, 숨을 쉬고, 말을 해. 그냥 무해한 흰 것으로 남아 있으렴. 눈사람 네 개를 만든다. 우리 가족 같다. 예쁜 접시에 담는다. 후~ 눈사람에 입김을 분다. 살아있는 눈사람을  냉동고에 넣는다. 영원히 살게 해 줄게. 눈을 한 바가지 더 퍼온다. 이제 나는 눈 요리사야. 눈으로 밥을 짓는다. 눈칫밥 먹지 마. 눈밥 먹자. 한 공기가 수북 담는다. 먹고 더 먹어. 아, 국도 끓여야지. 국냄비에 눈을 한가득 담는다. 오늘의 강도는 8. 펄펄 끓여줄게. 불에 닿는 부분부터 녹는다. 점점 무너지네. 더더 무너지네. 물과 눈이 뒤엉켜 빙산이 되었네.  꼴깍꼴깍 빙산마저 무너진다.


눈: 물이 되었다.



당신 나랑 눈싸움할까? 남편에게 싸움을 건다. 이 밤에? 응, 먼저 눈 감는 사람이 지는 거야. 실눈 뜨면 반칙이야. 웃기면 반칙이야. 남편의 눈을 바라본다. 나의 눈을 바라본다. 한때 우리의 두 눈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직 강은 녹지 않았어도 연둣빛 청춘이 새싹처럼 돋아난다. 양볼에 살 붙은 청춘들이 깔깔 웃어대는데 동심원같이 퍼져간 웃음이 열매처럼 익어가기도 했다.  때론 너의 눈 속에서, 나의 눈 속에 지진이 일기도 했어. 진원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난 지진은 동공으로 전파되고, 한 겨울의 눈싸움처럼 격하게 날아들고, 그만 던져. 그만 던져.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내가 진거야. 깜박이면, 깜빡이면 장대처럼 쏟아진다.


눈:물이 되었다.

 


(에필로그)오린이의 마음 단상


시인지, 에세이인지

눈인지 물인지 경계를 모르겠다.

어차피 마음대로 쓰는 거 마음이 불러주는 대로 썼다.  스무 살에 쓴 '눈,싸움'이라는 시도 같이 버무렸다.

일곱 살의 마음과 스무 살의 마음과 오십 살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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