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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Dec 18. 2024

팔십 엄마가 오십 딸에게 해주는 떡볶이 파티

팔십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 파티라?

호기롭게 연재 제목을 적고 보니, 싸한 느낌이 정수리부터 경추를 지나 등골까지 내려온다.

한 때 껌 좀 씹으셨던 옆 동네 언니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느낌은 뭐지?


저기~ 오린이

팔십 엄마를 그렇게 부려 먹어서야 되겠어?

용돈은 드리고 부려 먹는 거지?

지켜보고 있다. 오린이


팔십 노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얼마나 괘씸한 딸인가?  대한민국 팔십 노모 협회가 이 글을 읽는다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 글은 조용히 쓰기로. 절대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 메인에는 절대 절대 걸려서는 안 된다. 조용히 까치손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오늘은 12월 16일. 오린이 떡볶이 파티 D-day.


어릴 때 엄마는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어 주지 않았다. 생파는 커녕 떡볶이 파티도 열어주지 않았다.  친구들에 삥 둘러싸여 머리에 고깔모자도 쓰고 촛불도 불고 싶었으나 현실은 미역국 한 사발로 땡! 물론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아빠는 7남매 맏이였다. 호랑이 같은 시부모님과 시동생 6명의 뒤치다꺼리는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는 어쩌면 어릴 때 떡볶이 파티 한 번을 안 해줬어?

내가 얼마나 은실이네를 얼마나 부러웠는 줄 알아?


팔린이가 답한다

그래, 오냐.

그게 그렇게 한이었다면 이 엄마가 지금이라도 해주지.  

어디 한번 모여봐라. 우리 오십 딸 친구들~


팔십 엄마가 차려주는 떡볶이 파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떡볶이 파티에 초대된 4인을 소개한다.

포도송이 브런치 초기부터 구독자가 되어주고, 꼬박꼬박 라이킷과 응원을 보내  동료들. 평균 키 170cm, 평균 나이 45살.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오린이가 아니다. 그냥 브런치에 빠진 직장 언니의 소원을 풀어주고자 모인 착한 사린이 동생들이다.


우리는 오늘 제대로 어린이가 되기로 했다.


떡볶이 파티에 필수 준비물을 정했다. 마니토에 줄 2천 원짜리 선물. 선물은 절대 쓸모가 없어야 한다. 헤어지고 나면 바로 쓰레기통에 직행해야 할 선물이어야 한다.


마니토가 정해지면 일명 '오린이 4종 경기'인 공기놀이-젠가-할리갈리-팔씨름이 논스톱으로 치러진다.


먼저 공기놀이 스타트! 사실 요건 내가 단연코 유리했다. 얼마 전에 가족대항전에서 우승을 하지 않았던가. 예감은 적중했다. 오늘로써 나는 공기 2관왕에 올랐다. 두 번째는 젠가게임,  게임은 은근 눈썰미가 필요하다. 젠가와 젠가 사이의 아주 미세한 틈을 찾아내야 한다. 힘조절에 실패한 나는 그만 꼴찌를 했다. 할리갈리 게임은 진짜 오래간만에 해보는 거라 잠시 게임 룰이 생각나지 않았다. 른 연산, 순간 반응력, 긴 암 리치가 게임의 승패를 좌우한다. 가장 나이 많은 자와 어린 자 73년생 VS 82년생 빅매치가 있었으나, 결과는 어린 자의 승리였다. 마지막 게임은 팔씨름. 저러다 누구 한 명은 손목이 부러져서 당장 병가를 가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게임이 끝나고  수다타임이 이어졌다. 그리고 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사린이 오린이 오늘 재미있었나?

팔십 엄마가 해준 떡볶이는 맛있었나?


팔십 엄마가 오늘 좀 오버했다.

떡볶이만 해준다고 해놓고 느닷없이 묵을 쑤며 도토리 묵무침을 하질 않나 퇴근할 때 시금치 한단이랑 잡채용 고기 좀 사 오라더니 꼭두새벽부터  잡채를 하질 않나

이 정도면 오린이 떡볶이 파티가 아니라 미리 해주는 육린이 환갑잔치였다


친구 엄마가 해주셨던 떡볶이 한 냄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그런 가벼운 시절은 재방 불가, 재현 불가가 되어버린 걸까


떡볶이 파티에 온 사린이들의 양손도 무거웠다. 빵에 휴지에 꽃다발은 왜 사온건지,  사린이 삥 뜯는 오린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빈손으로 가는 게 국룰이었던 그런 가벼운 시절은 아주 오지 않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없이 유치했다. 그래서 즐거웠다.

고양이 레이스 방울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유치 찬란한 가발머리끈을 머리에 꽂고

미백 치약 한 개에 잇몸만개하고

비닐 집게 하나에 손목을 걸지 않았던가


12월 16일 오린이의 떡볶이 파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사린이 오린이의 뜨거운 우정과

팔린이의 사랑에 배터지는 날이었다.

어린시절의 부족함을 채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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