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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9시간전

나의 동지에게

식은 팥죽 같은 너의 삶을 응원하며

나의 동지에게


안녕 나의 동지. 지금은 밤이야. 너처럼 긴 밤이야. 저녁에 먹은 팥죽 한 그릇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밤이야. 너와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밤이야 


펄펄 끓던 팥죽 한 냄비가 겨우겨우 식어가는 밤이야. 차갑게 식은 밤에 식은 팥죽의 맛은 어떨까 궁금해졌어. 그래서 용기를 냈지. 엷은 팥의 장막을 사정없이 뚫고 밍근하게 식은 팥죽을 한 입 먹기로 했지.


뜨거운 팥죽과는 먹는 방법이 달랐어. 오래오래 씹었어. 이가 아닌 혀로 아주 모처럼 부드럽게 뭉갰지 모야.  역시 세상에서 제일 쉬운 건 식은 죽 먹기였어. 식은 죽을 먹으니 팥맛은 더 팥팥해지고 한없이 일그러진 새알심도 옹알옹알 단단해지네.  엉뚱한 상상도 해봤어.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의 어머니가 식은 팥죽을 줬다면 말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만큼 식은 팥죽도 맛있다는 얘기야


나의 동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야.

너의 삶은 펄펄 끓는 팥죽 같아

들러붙지 않기 위해 쉼 없이 저어주는 나무주걱 같아.철퍼덕철퍼덕 뜨겁다고 아우성을 치지. 너는 너의 삶을 너무 오랜 시간, 삶고 으깨고 푹푹 끓이고 있어. 한때는 펄펄 끓던 삶. 그때는 그때의 기억으로만 간직하는 건 어떨까. 나는 네가 다시 뜨거워지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군가의 혀에 너는 뜨거운 적. 고단한 너의 삶이 고요해졌으면 좋겠어. 이제는 식은 팥죽처럼 평화로웠으면 좋겠어.


나의 동지. 오늘은 가장 긴 밤. 그래서 긴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밤이야. 식은 너의 삶도 결코 누추하지 않다는 고백을 하기에 아주 적당한 밤이야. 그러니 나의 동지. 오늘 밤은 아주 평안하게 잠이 들게


2024년 12월 21일

너의 동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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