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세이는 세 번째 관장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걸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관장, 아니지, 좀 더 깍듯이 관장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새해 벽두부터 일어난 무섭고도 놀란 사건이었다.
1월 3일. PM 2시
싱가포르 여행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오후였다.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2층에서 다급히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올라갔더니 아빠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변기에 앉아 있었고, 엄마는 그 옆에서 우왕좌왕하며 집에 관장약이 있냐고물었다.
우리 집은 미니 약국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진통제도 종류별로 연고도 구순포진 연고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장약만큼은 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젖은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닦아내고 약국에 갔다. 넉넉히 사 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일단, 관장약 4개를 사가지고 왔다.
이윽고, 항문을 사이에 두고관장약과 아빠의 인내력과의 사투가 벌어졌다.
참아, 참아 좀 더 참아봐, 아니 그걸 못 참아?
엄마의 잔소리까지 더해지니 티격태격, 타다다닥 응급병동이 따로 없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응급상황이 끝났는지 조용해졌다. 2층에 올라갔다. 아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엄마는 장갑을 끼고 아빠의 관장 뒷수습을 처리 중에 있었다. 요란한 것은 아빠의 비실비실한 숙변냄새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빠의 변비 소동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가 했다.
그런데, 엄마의 말에 불길한 예감이 뒤틀린 장처럼 꿈틀거렸다. 아빠가 관장약을 무려 3개나 투여했다는 것이다.
뭐? 3개?
관장약 세 개면 아빠의 대장이 아니라, 우리 집 막힌 하수구도 뚫을 위력이 아니던가?
PM 5시. 문제가 발생했다.
엄마와 함께 장도 보고, 둘째 딸 학원 픽업을 하러 나갔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면, 변은 안 나오고, 피만 나온다는 것이다. 이미 5시가 넘은 시간이라 지금 바로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가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혼자는 못 간다며 참을 수 있단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6시가 넘었다. 아빠는 또 화장실에 있었다. 변기를 확인하니, 혈변이 소량이긴 하지만 뭉글뭉글 가라앉아 있었다. 막상 피를 보니 겁이 덜컥 났다. 그런데 응급실에 갈 상황도 아닌 정도의 피의 양이니 급한 대로 약국에 가서 상황을 이야기하고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사 왔다.
밤새 피는 멈추지 않았다. 3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가셨고, 그때마다 소량의 피가 나왔다. 진통도 문제였다. 타이레놀도 함께 드셨다. 일단, 이 밤을 잘 버텨야 했다. 새벽 1시쯤에 화장실에서 나오시는데, 아빠가 휘청했다. 아빠는 금세 중환자가 되었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맥주 캔 하나를 따서 반주로 드실 정도로 컨디션이 좋으셨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관장약 과용', '관장 후 혈변', '관장 부작용' 등등 다양한 검색어로 아빠의 상태가 위험한 지를 확인했다. 휴지로 막고, 옆으로 누워있으라는 답변,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한다는 답변도 있었다. 부작용에 대한 답변도 다양했다. 그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대장에 궤실이 있다면 천공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대장에는 궤실이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12월 중순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이상이 없었는 결과가 나왔다. 만일 천공이 생겼다면 저만큼의 출혈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 지금이라도 응급실을 모셨어야 했나. 아이 학원 픽업을 포기하고 아빠에게 달려갔어야 했나. 오만가지 추측과 반성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정작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간 건 둘째 여동생이었다. 9시 오픈하자마자 인근 항문외과에 갔다. 10시가 넘자 동생이 전화가 왔다. 초음파와 내시경을 해도 항문 근처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치질이 심한 상태이니 일주일 후에 다시 내원하라는 소견과 약을 처방해 줬다. 우선 다행이었다. 출혈은 전날보다 살짝 줄은 상태이나. 진통은 계속되었다.
이튿날 밤에도 아빠는 배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는 소화기 내과로 갔다. 역시 둘째 여동생이 모시고 갔다. 9시 병원 오픈런. 의사 선생님은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분이었다. 대장 엑스레이를 찍었으나, 이상 소견이 없으므로 CT도 찍지 않는다고 했다.배가 아픈 이유는 우리의 예상대로 관장약 3통에 있다고 했다.
약만 3일 치 지어주셨다.그리고 3일 후, 소량의 피가 완전히 멈췄다. 배가 아픈 증상도 멈췄다. 큰 병이라고 속단하고, 동네 의사의 오진을 의심했던 아빠의 의심도 멈췄다.
우리 집 대장인 아빠가 괜찮아지자 우리 모두에게 평온한 일상이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업무 중에 아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큰일이 아니면 전화를 안 하시는 분이기에 순간 너무 놀랐다.
"아빠 왜? 무슨 일 있어?"
"고마워, 딸들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이제 됐다. 아빠가 건강한 우리 아빠로 돌아왔다.
1942년생이신 아빠는 올해 83세. 81세까지 소일거리 삼아 개인택시를 할 정도로 건강했다. 아빠가 운전대를 놓으신 건 엄마와 자식들의 성화였다. 아빠는 그만큼 건강했다. 그런 아빠가 관장약 세 통에 완전 K.O패 당할지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관장이 무섭다는 건 일찌감치 주변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회사 동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을 때, 동료의 첫마디는 관장만 안 했어도, 조금 더 사실 수 있었을텐데였다. 관장이 그만큼 무서운 건 정말 맞다.
우리 아빠의 가장 큰 단점 중에 하나가 약물 과다 복용이다. 늘 정량보다 한 알 더라는 잘못된 습관이 있다. 지난해 배추 농사도 배추벌레약을 10배나 더 줘서 배추 100 포기가 몰살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