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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04. 2024

파리의 생

파리의 생애에 대해 쓰고 파리를 생각하다

퇴근 후 차문을 닫을 찰나, 볼펜 똥만 한 파리 한 마리가 내 차로 날아 들어갔다.

고작 점 하나만 한 파리를 내쫓기 위해 차문을 다시 열고 시동을 켜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시동을 켜는 순간,


어? 어? 어제 그~

볼펜 똥만 했던 파리가 두 배는 커져서 차 유리창 사이를 비행한다. 밤사이 따블이 된 건가?

도대체 파리는 먹고 이렇게 큰 거지 싶어 안을 살펴본다. 메로나 껍데기, 초코송이 몇 개,  한라봉 에이드는 1/3이나 남았다.  


파리에게 이곳은 코스트코 같은 초대형 마트였구나.

  

문제는 파리가 나갈 생각이 없다는 거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 바람을 낮추고 손을 쉬이 쉬이 저어도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게 아닌가? 운전 중 파리 쫓다가 사고날라 싶어서 생각을 바꿨다. 차라리 파리의 성장을 더 지켜보자 쪽으로 말이다. 나만 조용히 출근한다면 파리는 누구의 방해도, 목숨도 위협받지 않고, 단독룸, 단독먹이를 갖춘 풀빌라에서 좀 더 생애를 즐길 것이다.


잘 쉬렴, 파리야, 퇴근길에 만나자.


일하는 틈틈이 파리의 성장, 습성, 질병에 대해 찾아보았다.

무공해 나의 애완파리를 만날 상상을 하니, 하루가 호기심 천국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퇴근길,  후다닥 차문을 열고 시동을 켜는데

안 보인다. 앞유리창에도 옆자리에도 뒷자리에도 아름다운 비행으로 나를 맞이할 파리는 보이지 않는다.

파리는 죽은 것일까? 정말 죽은 것이라면 사인은 무엇이었을까?  

메머드급 먹이를 독식한 결과 과식 소화불량에 걸려 병사한 것인가?

하지만 파리는 소화작용이 빨라 거의 5분 간격으로 분을 배출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면 고독사? 파리의 비행거리는 1마일이라는데 안은 고작 2m 정도이니 바퀴를 돌아도 제자리인 삶이 많이 고독했을까?

차라리 숙환이라면 좀 덜 슬플까? 나에게는 고작 9시간이지만 파리에게 상대적 시간은 90년 같을 수 있으니까. 


운전하는 내내 파리의 짧은 생을, 행복했을 수도 불행했을 수도 모를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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