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헬스장 연간회원권을 끊었다. 이용료는 없다.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언제든 갈 수 있고, 16개의 운동기구와 구기종목으로는 배드민턴장까지 이용할 수 있다. 단 근육질의 트레이너가 상주하리라는 기대는 마시라.
'파도타기 ' 운동기구는단연 인기다. 7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허리를 좌우로 반복적으로 흔들며 파도를 탄다. 기울기는 대략 30도쯤. 이때 60대 후반의 건장한 아저씨가 등장한다. 이 헬스장의 장점이자 단점은 똑같은 기구가 마주 보고 있다는 것. 아주머니에게 파도타기 파트너가 생긴 셈이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아주 약간의 안면이 있는 모양이다.
아저씨가 두어 번 왔다 갔다 파도를 칠 무렵,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저랑 배드민턴 치실래요?"
순간, 내 귀가 쫑긋~
낯선 남자와 배드민턴을 치자는 저 멘트는 플레이인가 플러팅인가.
순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유지태에서 던진 '라면 먹고 갈래?' 명대사가 떠올랐다.
거의 그 급이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어르신들의 플러팅.
"저 안쳐요."
거절이다. 어쩌나. '먹고 갈래요'로 받아치던 유지태의 대사와는 사뭇 다른 전개.
아저씨는 얼마 전 공치러 다녀온 후 어깨가 좋지 않다고 하시지만, 진짜 못 치시는 건지, 안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그 후 아주머니는 오지랖 같은 플러팅을 몇 번 더 하셨다. 잘하는 단골한의원을 소개해주겠다, 약침 몇 번만 맞으면 개운해진다, 뭘 먹으면 좋다, 등등등.
결국 아저씨는 옆운동기구로 옮긴다.
하필'줄 당기기 '.
그런데 저 아저씨 어깨가 안 좋으신 것치고는 쭉쭉 너무 잘 당기신다.
괜히 민망하고 화끈한 건 나뿐인가? 그 누구도 관심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공중 걷기'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무에 등을 친다. 나 역시 주어진 코스대로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간다.
빈 배드민턴장이 보인다.
아마 저 아주머니의 플러팅이 성공했다면, 지금쯤 두 분은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고 계셨겠지? 싶다. 그러나 비록 실패했어도 각자 즐겁게 본인의 운동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너무 재미없게 산거다. 그동안 낯선 이성에게 플러팅이라곤 해 본 적이 없으니, 아주머니의 별거 아닌 대사가 나에게만 꽂혔던 것 같다. 플러팅이 별 건가? 나도 언젠가는 해보리라, 남편에게라도 당장 연습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