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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21. 2024

약수터헬스장에서 플러팅 하는 법을 배웠다.

약수터 헬스장 연간회원권을 끊었다. 이용료는 없다.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언제든 갈 수 있고,  16개의 운동기구와 구기종목으로는 배드민턴장까지 이용할 수 있다. 단 근육질의 트레이너가 상주하리라는 기대는 마시라.


'파도타기 '  운동기구는 단연 인기다. 7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허리를 좌우로 반복적으로 흔들며 파도를 탄다. 기울기는 대략 30도쯤. 이때 60대 후반의 건장한 아저씨가 등장한다. 헬스장의 장점이자 단점은 똑같은 기구가 마주 보고 있다는 것.  아주머니에게 파도타기 파트너가 생긴 셈이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아주 약간의 안면이 있는 모양이다.


아저씨가 두어 번 왔다 갔다 파도를 칠 무렵,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저랑 배드민턴 치실래요?"


순간,  내 귀가 쫑긋~

낯선 남자와 배드민턴을 치자는 저 멘트는 플레이인가 플러팅인가.

순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유지태에서 던진  '라면 먹고 갈래?' 명대사가 떠올랐다.

거의 그 급이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어르신들의 플러팅.


"저 안쳐요."

거절이다. 어쩌나. '먹고 갈래요'로 받아치던 유지태의 대사와는 사뭇 다른 전개.  

아저씨는 얼마 전 공치러 다녀온 후 어깨가 좋지 않다고 하시지만, 진짜 못 치시는 건지, 안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그 후 아주머니는 오지랖 같은 플러팅을 몇 번 더 하셨다. 잘하는 단골 한의원을 소개해주겠다, 약침 몇 번만 맞으면 개운해진다, 뭘 먹으면 좋다, 등등등.


결국 아저씨는  운동기구로 옮긴다.  

하필 '줄 당기기 '.

그런데 저 아저씨 어깨가 안 좋으신 것 치고는 쭉쭉 너무 잘 당기신다.

 

괜히 민망하고 화끈한 건 나뿐인가? 그 누구도 관심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공중 걷기'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무에 등을 친다. 역시 주어진 코스대로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간다.


배드민턴장이 보인다.

아마 저 아주머니의 플러팅이 성공했다면, 지금쯤 두 분은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고 계셨겠지? 싶다. 그러나 비록 실패했어도 각자 즐겁게 본인의 운동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너무 재미없게 산거다. 그동안 낯선 이성에게 플러팅이라곤 해 본 적이 없으니, 아주머니의 별거 아닌 대사가 나에게만 꽂혔던 것 같다. 플러팅이 별 건가? 나도 언젠가는 해보리라, 남편에게라도 당장 연습해 보리라.


"라면 먹고 갈래요?" 이런 건 우리 나이에 안  맞는다. 괜히 혈당만 높아질 뿐.

"배드민턴 같이 치실래요?"  요게 딱이다.


언젠가 나도 꼭 해보고 싶은 멘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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