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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03. 2024

머리 싸움도 안 되고, 머리카락 싸움도 안되고


머리카락이 패잔병 같이 누웠다. 

안방 파우더룸 바닥에. 그것도 아침부터 생애를 다한 거다.  

제 역할을 다한 모낭세포에 잠시 인사를 한다. 슬픈 굿(?)모닝이다. 

계절이 바뀌는 털갈이 시즌이면 혹은 탈모의 시기이면 유독 패잔병은 늘어난다. 

치우는 언제나 엄마인 나의 몫. 청소용 부직포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일주일만 모으면 가발도 만들겠다 싶다. 머리카락 주인을 찾아본다. 검고 굵은 딸꺼, 갈색이지만 윤기나게 찰진 둘째 딸꺼다. 

남편꺼는 제일 짧지만 그래도 내꺼보다는 굵다. 염색모에 제일 얇고 안쓰러운 건? 맞다 바로 내꺼다.

지금 당장 머리카락 싸움판을 벌인다면, 당연히 꼴찌는 나다.


왕년에 나도 머리카락 싸움계의 킹왕짱이었다. 

그 시절 나는 머리는 가장 좋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은 꽤 굵은 편이었다. 어떤 싸움도 자신없었던 내가 유일하게 즐기던 싸움이었다. 

손끝으로 굵기를 가늠한다. 요거다 싶으면, 톡! 낚아챈다. 빨리 하나만 뽑아야 안아프다. 개를 뽑는건 아까워서가 아니다. 덜아프기 때문이다. 

움은 지금부터다. 팽팽하게 머리카락을 십자로 맞댄다.  위쪽이라고 아랫쪽이라고 반드시 유리한 것만 아니다. 굵은 놈이 가장 유리하다. 가끔 굵지는 않지만 유독 윤기나고 질긴 복병들이 등장했지만, 내꺼는 굵기로 일단 압도했다.  


시절 우리는 모두 머리카락 부자였고, 최고의 싸움꾼들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머리카락은 감히 뽑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수만 있다면 떨어진 머리카락을 다시 붙이고 싶다. 패잔병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만 있다면... 비싼 값의 샴푸를 치를 수도 있다 다시 부직포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본다. 잠시 상상한다. 떨어진 머리카락 끼리 싸움을 하는. 저~ 찰지고 윤기나는 둘째딸 꺼랑 내꺼가 붙는다면 닿기만 해도, 두 동강!  어디 머리카락 뿐이랴?  머리로도 당할 제간도 없다. 사춘기를 거치더니 공부도, 말싸움도 나보다 더 잘한다.


머리 싸움도 안 되고, 머리카락 싸움도 안 되고


싸움이 끝나면 평화가 찾아온다고 했던가? 

머리카락 청소가 끝났다. 파우더룸에 깨끗한 평화가 찾아왔다. 

굿 모닝! 굿 모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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