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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05. 2024

교장선생님과 동급 되던 날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세월에 대한 배신감의 무게가 똑같았다. 나에게는

 주일 전, 강화도를 다녀왔다. 강화도 하면 기도발이 효험 하다는 보문사를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보문사가 첫 번째 목적지라면 두 번째 목적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양식의 성당인 강화성당이었다. 


 운이 좋았다. 보문사 해수관음상의 기도발이 통한 걸까? 강화성당에 도착하자 정체불명의 중년 무리가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었다. 잽싸게 그 무리에 들어갔다. 게다가 이게 웬 횡재인가? '역사 저널 그날'에 나올법한 수준급 해설사가 설명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강화 성당 설립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한 편의 역사 다큐를 직관한 감동이었다. 게다가 함께 듣던 무리들의 수준도 상당한 모양이다. 관광지답지 않게 진지했다.


나는 자연스레 그 일원이 되었다. 성당 내부의 설명이 끝나자, 해설사의 눈빛이 나에게도 향했다. '자 이제 이쪽으로 가시죠' 라며 자연스럽게 나를 그 무리로 이끌었다. 마치 그 일원이라도 된 양 성당 뒤뜰로 함께 넘어갔다. 마침 신부님이 나오시더니 설사님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냐고 물으시는 모양이다. 드디어 이 무리의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


뭐? 교장선생님이라고? 

궁금증과 함께 다리도 풀리고 말았다. 지방에 있는 교장 선생님의 강화도 연수였던 모양이다. 교감도 아니고, 평교사도 아니고, 교장 선생님? 여기서 다리가 풀린 이유는 이 무리에서 나의 존재는 전혀 어색함이 없이 동일 연배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조금 위로한다면 능력 있는 교사가 살짝 이른 승진을 한 느낌?

나에게 교장 선생님은 복도 한편에서 뵙게 되면 폴더 인사를 해야 할 큰 어른이다. 복도에서 뛰어가더라도 교장실 앞에서는 새끼발을 들고  사뿐사뿐 걷던 것이 엊그제 같단 말이다.  세월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비슷한 강도의 배신감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스무한두 살 때쯤이었다. 학과 동기들이 한 두 명씩 군대를 가면서 알아버렸다. 존경을 담아 위문편지를 쓰던 대상이 군인아저씨가 군인 동기로 바뀌었음을. 지금 생각하면 청춘이었던 시절이었건만, 군인 아저씨가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닌 순간, 나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군인 동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 군인 아들을 넘어 군인 순주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


세월을 뒷걸음질 칠 순 없을까? 뒷걸음질 치듯 교장 선생님 무리에서는 나왔다. 세월을 뒷걸음질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장선생님 연배가 할아버지의 연배로, 군인 아들이 아닌 여전히 군인 아저씨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타임슬립하고 싶다. 기도라도 드려볼까? 보문사 해수관음상이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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