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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Oct 21. 2024

여전히 우리의 생은 <생의 한가운데>있다.

책 리뷰 아님 주의


반가운 책 한 권이 반납되었다.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전혜린 옮김


겉표지는 너덜너덜, 두 번째 속페이지부터 오래된 물자국이 번져있다.

오래되고 낡았으나 새 책이 쏟아지는 치열한 800번대 서가에 비치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명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아주 가끔 누군가가 대출했기 때문이다.


'반갑다. 친구야'

나는 이 책의 표지에다 이렇게 외칠 뻔했다. 이 책은 삼십 년 전 친구가 읽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방금 읽은 책 제목도 가물가물한 판국에 30년 친구가 읽은 책 제목까지 기억한다는 그만큼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다.


구태의연한 에세이가 될 테지만 잠시 생의 시계를 청춘의 한가운데로 돌리려 한다. 타임슬립한다.




이번에도 합격자 명단에는 내가 없었다.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가기 위해 재수까지 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건 후기대 하나뿐이었다.

내년에는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다 하니 나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 보였다. 점수를 수십 점  낮춰서라도 무조건 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어렵게 후기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나의 첫 수강과목은 현대시 개론.

면접  우아한 교수님이 담당 교수였다. 

시인이고 평론가셨다. 게다가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대학의 교수였는데, 몇 년 전 우리 대학으로 부임하셨다. 선배로부터 들은 사실이지만 남편분은 더 유명한 교수고 시인이고 소설가라 했다. 내게는 전화위복 같은 기회였다.


과제로 제출한 시 중 좋은 시 몇 개를 교수님이 뽑아 소개해주셨다.

당연히 나는 시가 뽑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주종목은 산문이었지만, 시라고 내가 못쓸까, 한 마디로 오만방자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갈대'에 대해 썼는데, 그 당시 스무 살 문학소녀가 표현할 수 있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였다. 당연히 교수님의 눈에 들지 않았다.


'뭐지? 저 시는?'

교수님의 눈에 띈 시는 완전히 내 예상을 빗나갔다.

<생의 한가운데> 소설 속 주인공 니나에게 쓴 시였다.

저렇게도 시를 쓴다고? 저게 편지야? 독후감이야?

지금까지 내가 좋은 시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시란 자고로 살랑살랑 봄바람이 깃털처럼 일렁이고,

서걱서걱 가을낙엽이 가슴에서 부서지게 써야 되는 줄만 알았다.


교수님이 내 시를 잘 못썼다고 비판하지 않았지만

교수님이 선택하신 친구들의 시를 통해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

힘을 빼자, 자유롭자, 만져보자, 냄새를 맡아보자, 뒤집어보자, 때론 돌덩이도 되어보자


간신히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뜻밖의 전화가 왔다. 당시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너네 학교 교수라는데?'

교수님이 그때 나에게 전화를 한 이유를 요약하면 세 문장이었다.

기말과제를 읽었다. 개인 사사를 해주겠다. 목표는 졸업 전 등단이라 했다.

하늘을 날 듯이 기뻤다. 내가 드디어 인정받았구나. 꿈같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2학기가 되자마자, 동인을 만드셨다.

첫 멤버는 딱 세 명이었다.

교수님, 나, 그리고 <생의 한가운데 > 속 주인공 니나에게 편지를 쓴 그 친구였다. 

세 명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었다. 물론 늘 교수님이 사주셨다.

동인은 학기가 지날수록 점차 늘어났다. 실제, 그 동인에서 문예지 당선자, 신춘문예 당선자가 몇 해 사이에 쏟아져 나왔다.


<생의 한가운데> 주인공에게 시를 썼던 친구는 나와 절친이 되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우리는 흩어졌다. 각자의 꿈이 달랐다. 취업 전선으로, 결혼으로, 출산으로 뛰어들었다. 가끔 안부를 물었지만 전혀 다른 생을 살았다.




파도가 몇 번 친 것 같은데 오랜 생이 흘러갔다.  


30년 후 우리는 브런치 작가로 다시 만났다.

보름 내가 먼저, 브런치의  세계로 뛰어들었으니, 브런치라는 세계에 그 친구의 손을 잡고 내가 끌어들인 셈이다.


"우리는 생 가운데를 방랑해 다니고 있어. 마치 집시처럼. 애들이 있는데도 나는 아무 데도 속해 있지 않아..... 그렇게 해서 나는 또다시 불안정 속에 혼자 있게 되는 거야. 내 생에는 뚜렷한 선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생이 한가운데, 니나의 말 >


여전히 불분명한 생의 경계에서 다시 만나 우리는 다시 글을 쓴다. 삼십 년 전과 다른 게 있다면, 그때의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글을 썼다면 지금의 우리는 그냥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글을 쓴다.  


과연 그 친구는 누구일까?

이제 그 친구의 복면을 벗길 시간이다.

그 친구는 바로바로바로바로~

월요일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로 절찬리 연재 중인 뽀득여사 다.


고뇌와 절망이 가득 찬 주인공의 삶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그 친구의 글은 여전히 긍정이 차고 넘친다. 좌우 재지 않고 직진하는 호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생의 한가운데>

반납된 책을 다시 집어든다.

코라스에 내 이름을 입력한다.

이 낡고 오래된 책을 대출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을 한 번도 완독 하지 못했다.

스무 살의 내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웠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글을 쓰는 이 삶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생이 끝나는 날까지도

생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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