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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Nov 03. 2024

도서관 방귀에 얽힌 리얼리티 에세이

[방귀학개론] 에세이의 품격을 높이고자 책리뷰와 함께 씀

이번 에세이는 오래 기다렸다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에는 부족했고. 쓰지 않기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오래 관찰해 온 이야기다.  도서관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방귀 소동이다.


빵! 축포가 울린다.




쉬는 날인데, 카톡이 하나 울렸다. 함께 근무 중인 선생님께 온 톡이었다. 방금 남자 어르신 한 분이 어린이실 신착코너에서 방귀를 냅다 뀌시고, 사라지셨다는 것이다.  뭐? 방귀만 뀌고 나가셨다고? 그런 황당한 일들이 가끔 조용한 도서관에서도 일어난다.

그럴 때면, 도서관 직원으로서 매우 난감하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나 대놓고 웃는다면 민원이 발생할 수 있으니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냄새라도 남기고 다면, 뒤처리는 물론이거니와  출처 불분명한 그 냄새가 직원의 것인 양 자칫 오해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


실제  나는 도서관에서 방귀 때문에 오해받은 일이 두어 번 있었다.


어린이실 근무 때였다. 만화 서가가 북적이던 주말이었다. 만화책을 정리하기 위해 서가에 갔는데, 정말이지 너무도 지독한 방귀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어찌나 고약한 지 숨을 들이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냄새의 밀도로 보아, 방금 만화책을 가져간 녀석인데. 남자아이들의 뒤통수는 비슷비슷해서 범인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정리는 나중 문제! 냄새가 지독하니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나가려던 찰나에 만화 서가로 들어서는 어린이 이용자와 만났다.

표정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너도 맡았구나. 하긴 이걸 못 받으면 당장 이비인후과에 가야지.

나는 눈빛과 표정으로 어린이 이용자에게 말했다.

지금 누군가 방귀를 뀌고 갔는데, 냄새가 고약하니 조금 있다가 책을 고르는 게 어떠니?

그런데, 우리의 교감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꾸 코를 킁킁거리면서 이상한 눈으로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나? 나? 아냐 진짜 아니야


짧은 찰나였으나, 나의 셈은 복잡해졌다.

여기서 내가 유유히 사라진다면 나는 방귀 먹튀자가 될 것이고

여기에 머물자니 그 방귀는 내가 뀐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할 터였다.

후자가 낫겠다 싶었다.

책을 정리한 척하며 내가 뀐 방귀가 아니라는 표시로 나 역시 코를 흠흠 거렸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보였다. 급기야는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잠시 열어두는 제스처까지 보였으니  방귀 용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두 번째 오해는 문헌정보실에서 있었다.

꽤 오래 봉사하러 오시는 성인 남자분이 계셨다.

자주 오니,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편해지셨는지, 까치머리에 운동복 복장으로 오시곤 했다.

나는 상호대차된 책을 찾기 위해, 그 봉사자가 있는 서가 다음 칸으로 갔다.

하필 맨 아랫칸에 꽂혀있는 책을 빼기 위해 쪼그려 앉으려는데

!

하고 방귀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내 소리가 아니었다. 나도 하마터면 내 소리라고 오해할 뻔했다.

내가 아니라면, 범인은 단 한 명.

앞 칸에 있던 봉사자였다.

나는 소리에 놀라고,  성인 봉사자의 대범함에 한번 더 놀랐다.

주변에 이용자가 없다고 하나, 조용한 도서관 문헌정보실에서 안 들리는 곳이 있었을까?

봉사자야 계속 서가에 남아 정리를 하면 되지만. 나는 책을 가지고 여기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방귀 뀐 자의 누명을 받지 않기 위해 계속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쩌겠나.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서가를 빠져나갈 수밖에.

속마음은 몰라도 겉으로는  모두들 책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눈에 집중하는 자 귀는 막혀있을 거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다른 도서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떤 분이 책을 읽다가 방귀를 뀌시는데, 그 소리가 크기도 크거니와 길이도 길어서 주변인을 놀라게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쪽 책상에 '방귀 금지'라는 메모를 살포시 붙여놨다고 했다.

그래도 메모를 본 이후로는 방귀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조용한 도서관에서 방귀를 뀌는 것인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인가? 그 속내까지 궁금하던 찰나,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스테만 게이츠가 지은 '방귀학 개론'이라는 책이다.  '세상 진지한 방귀 교과서'라는 부제만큼이나 방귀 화학, 방귀 생물학, 방귀 물리학 다양한 과학적 근거들로 방귀를 설명하고 있다. 내 생전 그렇게 재미난 개론서는 처음이었다.


책을 읽고 방귀를 이해하는 지식의 폭이 넓어지니 도서관에서 방귀 뀐 자들의 장의 상태와 마음을 분석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만화책 서가에서 지독한 방귀를 뀐 어린이~ 그 어린이는 아침 메뉴로 고기와 치즈를 먹었을 확률이 높다.

가장 독한 방귀들은 아미노산을 분해한 결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특히 콩과 치즈, 육류에 그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어린이 신착서가에서 방귀를 뀌고 냅다 도망간 어르신~ 그분은 직장과 항문의 싸움을 말리지 못할 만큼 괄약근의 힘이 없었던 게다.  책은 방귀란 직장 내의 고기압과 항문으로 방귀가 빠져나가면서 만들어지는 저기압 사이의 싸움이라고 했다. 손주 녀석 동화책이라도 빌려주러 도서관에 오셨다가, 싸움을 제지할 틈도 없이  나온 방귀에 줄행랑을 치신 건 아닐까 싶다.

방귀로 주변 사람들만 놀라게 했던 이용자님~ 평소 돼지감자를 드시거나 청력이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돼지감자가 지구상에서 방귀를 유발하는 최고의 음식이라고  하니 말이다. 청력이 안 좋으면 본인의 방귀 소리가 엉덩이 하품소리 정도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다면 그 성인 봉사자 자기의 신체에서 방귀가 나올 거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것은 반박할 근거가 있다. 방귀학 개론 110p에 나온다.

직장에 방귀 가스가 차오르면 압력이 쌓이고, '이제 바로 방귀를 뀌어야겠다.' 혹은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욕구로 느껴집니다. 아주 작은 기계수용체들이 영리하게도 뇌에 메시지를 보내주는 덕분입니다. '뒤를 조심해. 큰 덩어리가 내려오고 있다고.' 이런 느낌은 아주 정교해서 보통 우리는 방귀와 똥을 구별할 수 있죠. 바깥조임근을 풀어주기로 결정하면 압력이 높아진 가스가 힘을 써서 항문 사이로 작은 구멍을 열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러니까 그분은 뇌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그냥 방귀를 배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들이 방귀를 뀌지 않고 참았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 역시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먼저 속이 불편하고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 그것을 배출하지 못하면 서서히 통증으로 되어 소화불량과 속 쓰림으로 넘어갈 수 있다. 숨결에서 방귀냄새가 날 수 있다고도 한다. 방귀가 장 속에 너무 오래 머물면 가스가 결국 혈류로 재흡수되어 호흡으로 배출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주 무시무시한 결말도 있다. 방귀를 집요하게 참는다면 게실 천공이 발생하여 장이 파열될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일이다.


방귀를 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방귀를 뀐 자에게 대한 다정한 대처법은 못 본 척해 주는 일이 아닐까.


앤드루 마블은 이런 시를 썼다. 방귀학 개론에 나온 부분을 인용한다.


우리의 모든 힘과 다정함을 뭉쳐

공 하나로 만들어봅시다.

그리고 생의 강철 문을 통해

한바탕 싸움으로 우리의 기쁨을 터뜨려 버립시다.


오늘은 11월 3일. 가을이라는 계절이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우리도 생의 기쁨을 터트리자.  때와 장소는 적절히 가려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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