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임산부에는 임산부 배려석을
지하철에는 유독 핑크색으로 화사함이 가득한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혀있다.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카펫'
몸이 천근만근인 임산부를 위한 좌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합계출산율 0.78 명이라고 한다. 합계출산율이 2.1 이하이면 현재 수준의 인구 유지가 불가능하여 저출산이라고 구분한다. 한국은 이미 1983년 저출산 국가에 진입하였고 2002년에는 합계출산율 1.3 이하인 초저출산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에만 지하철을 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임산부가 이용하는 걸 본 적이 상당히 드물다. 대부분 비어 있거나 임신했다고 보기 어려운 승객이 앉는다.
임산부를 위해 비워두자고 캠페인을 여러 차례 했는데 왜 지켜지지 않는 걸까?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상당한 계도기간이 필요한 걸까? 오래 전 지인이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내게 말했다.
"잠시 앉았다가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니까 일단 앉을게."
외국에는 'empathy belly'라고 해서 만삭의 산모가 느끼는 고통과 불편을 간접경험 할 수 있는 임신공감용 복대가 있다. 몇 년 전 포드자동차는 엔지니어들(주로 남성)에게 임신공감용 복대를 착용해 보도록 요구한 적이 있다. 이 실험용 복대를 착용한 엔지니어는 허리 통증과 방광에 느껴지는 압박감, 30파운드(약 14kg) 이상 늘어난 몸무게 등 임신에 따른 증상들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태아의 발차기를 모방한 ‘움직임’도 느낄 수 있다.
엔지니어들이 임신공감용 복대를 착용한 목적은 임신부가 운전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인체공학적 차원의 불편함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예로,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제한되고 운전하는 자세와 무게중심이 바뀌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몸의 움직임이 힘겨워지는 상황을 엔지니어가 이해하도록 하는 데 있다.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경험이 공감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무색하게 만드는 장면을 종종 포착한다. 개인적인 관찰의 결과이지만 그 자리를 이용하는 분 중 유독 임신 적령기를 훌쩍 넘긴 여성분들을 많은 본 것 같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도 캐리어와 명품백을 든 단발의 중년 여성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 취하는 자세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하다. 소중한 핸드백은 대퇴근 위에 올리고 양손으로 가방의 핸들을 잡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은 지그시 감는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려면 그 아이의 가정 하나만이 아니라 부모, 학교, 이웃이 모두 힘을 합쳐 교육하고 양육하고 키워나간다는 의미로 아이를 대하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긴 속담이다. 이웃 간 공동육아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힘들다면 지하철 내 탑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임산부를 위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둔다면 어떨까? 어쩌면 작은 배려가 꾸준히 누적되어 큰 변화를 만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