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후 Apr 17. 2023

정비 부사관이 카이스트의 기술사업화를 담당하게 되기까지

교수를 포기하고 창업 현장에 나선 벤처캐피탈리스트 노태석의 이야기 (1)

그동안 정부가 시행했던 저출산 고령화 사회 정책은 자연적 인구감소 측면에만 주목해 사회적 인구감소 영향이 큰 지방소멸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지방소멸을 막을 방안으로 지역창업 활성화가 언급되고 있지만 아직은 지지부진하다. 부산 스타트업 대표 95명을 대상으로 부산 창업 환경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95명 중 51명이 부산에서 사업을 지속하지 않거나 떠날 고민을 한다고 응답했다. ‘부산에서 계속 사업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46명이 ‘고민 중’(48.4%), 5명이 ‘아니다’(5.3%)라고 답했다. ‘그렇다’는 응답은 42명(44.2%)에 그쳤다.


부산 스타트업 창업자 과반이 부산을 떠날 계획이 있거나 떠날 고민을 하는 것은 자본과 인재 등 창업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부산이 창업하기 좋은 환경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창업가는 13.7%에 그쳤지만 '아니다'라고 답한 창업가는  44.2%였다. 무엇보다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투자유치가 힘들다고 호소했다. 창업가 열 중 아홉은 초기·후속 투자 모두 '매우 어렵다'라거나 '어렵다'고 했다. 2022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법인이 세워진 곳은 서울, 경기를 제외하면 부산이다. 그런데도 부산이 이렇게 앓는다면 다른 지역은 더욱 심각할 것은 자명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BNK벤처투자에서 부울경(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지역)벤처투자센터라는 별도 조직을 운영하는 노태석 부장님을 만났다. 그는 현재 BNK부산지역혁신 벤처펀드, 동남권 지역혁신 벤처펀드 등을 주력으로 운영하며 동남권 지역 스타트업의 시리즈 A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노태석 부장님 입장에서는 자칫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인심 좋은 밥집처럼 답변 하나하나에 진심을 가득 눌러 담아 대접해주셨다.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4문장 이내)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BNK벤처투자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는 노태석입니다. 부산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마케팅 세부 전공으로 박사를 졸업하였어요. 대학원 동문과 함께 시작한 (주)스마트파머를 통해 2016년에 액셀러레이터로 경력을 시작하였고 미래과학기술지주(주)를 거쳐 현재 BNK벤처투자에 합류하여 지역투자를 담당하고 있어요. 어느새 벤처캐피탈리스트라는 직업에 푹 빠져 주말과 평일 구분 없이 스타트업 대표님과 통화하고 회사소개서와 투자유치자료를 검토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덕분에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직장인이지만 제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도가 높아요. 그리고 사랑스럽고 별난 일곱 살 아들을 둔 아빠이기도 해요.


ⓒBNK벤처투자

 

Q.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지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었나요?

중학교 시절은 나름 모범생으로 무난하게 보냈는데 고등학교 진학해서는 비교적 늦은 사춘기가 왔어요.


‘도대체 왜 공부해야 하지?’ 왜 이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 구속되어야 하지?’


학업과 학교에 대한 의문과 회의감이 들었고, 답을 찾지 못해서 많은 방황을 했어요. 당시 교과서보다 만화책을 더 가까이했어요. 나우누리와 천리안과 같은 PC통신 서비스에서 만화 동호회 활동도 열성적으로 할 때였죠. 하루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만화출판사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직원을 붙잡고 다짜고짜 애원했어요.


“저 꼭 만화업계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문하생이든 말단직원이든 일을 해볼 수 없을까요?”


당시 문전박대를 할 수도 있었는데 담당자는 친절하게 응대해줬어요.



“우선 업계를 설명해 드리자면 편집자가 있고 작가님들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보통 대학을 졸업 후 이쪽 업계에 들어와요. 아직은 학생 신분이고 집에서도 학업을 마치길 원할 테니 우선 귀가해서 부모님과 충분히 상의하고 대학 입학 후 진로를 고민해도 늦지 않아요.”


사실 부모님과 논의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스토리를 기획하는 것도 좋아했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는데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했어요.


“남자가 무슨 그림이야?!”


간절히 원했던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고등학교 시절 방황을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반항심에 대학교 대신 직업반 가서 취업을 준비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또 반대하셨죠.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릴 때는 착실하게 말을 잘 듣던 아들이 자꾸 공부가 아닌 다른 길로 빠지려고 하는 것 같아 답답하셨을 거예요. 저는 결국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대학 진학 대신 입대를 선택했어요.


Q. 만화가 지망생에서 군 부사관으로 삶이 바뀌었는데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사실 군 부사관을 염두하고 입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 현역병으로 복무하던 중 상병은 부사관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선발되면 하사 임용과 동시에 장려금으로 당시 돈으로 약 50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급한다는 말을 듣고 더욱 솔깃하였어요. 사실 저는 원래 자유분방한 성격이어서 부사관으로 근무하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죠. 하지만 당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제가 벌어서 제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어요.



부사관 합격 후, 차량 정비 기술부사관으로 근무했어요. 다행히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해서 적성에 잘 맞았죠. 부사관이라는 직업은 안정적이었지만 너무 정해져 있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점차 커졌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많이 돌아온 것 같았지만, 내친김에 얼마 안 되는 월급 중 일부를 떼어 학점은행 학비로 쓰며 대학 학부 과정을 독학으로 수료했어요. 예정과 달리 군 생활이 길어졌지만 돌이켜보면 이때를 기점으로 삶을 알차고 의미 있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증폭되었어요.

 

Q. 경영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거쳤는데 오직 부산대만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군 생활을 경기도 파주에서 했었는데, 전역 후에는 꼭 고향인 부산에서 자리 잡고 살아야겠다는 결정을 군 복무 시기에 굳혔어요. 다른 곳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객관적으로 저 스스로를 평가했을 때 수도권 명문대에 갈만한 수준도, 여건도 아니었어요. 당시 거점 국립대 장학 혜택과 연구비 지원 등이 좋아서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학위를 마칠 수 있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대학원 지원자 중 제가 턱걸이로 아슬아슬하게 선발되었다고 해요. 그나마 외국에서 오래 공부하신 한 교수님이 합격자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놈 이력이 특이한데, 꼭 한번 뽑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 부산대 대학원 지원자들이 부산대 학부 출신이 대부분인데 부사관 출신으로 군 복무를 하며 학부 과정을 독학으로 마친 지원자는 30년 교수인생 동안 처음 본다고 무척 흥미로워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분 역시 가톨릭 신부님이 되기위한 과정을 밟던 중, 교수가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어요. 다행히 부산대의 자유로운 학풍은 저와 잘 맞았고 교환학생 기회, 창업지원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점도 당시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대학원과 학부는 복수학위가 가능했는데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부산대 학부로 편입하여 학부 과정을 다시 들을 정도였어요. 이후 부산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며 부산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모두 받게 되었어요.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게 되었던 만큼 통계학과나 공과대학 청강도 하고, 심리학과나 철학과, 예술대학 쪽 교양수업도 들으며 식견을 넓혔어요.


Q. 박사후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으로 근무하였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였나요?

부산대학교 경영연구원 소속으로 다양한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다른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지역 중소기업들의 브랜드 구축작업, 서베이 기반 마케팅조사,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 경영전략 수립, 마켓리서치 등의 컨설팅 업무를 했었습니다. 스타트업들과는 주로 고객 유입을 위한 마케팅 퍼널 설계, 효율 분석, 프로모션 콘텐츠 기획 등을 함께 했습니다.



컨설팅을 해드렸던 기업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스타트업이 한 곳 있어요. 제가 그 기업의 마케팅전략을 세웠는데 정작 제품이 품질적인 면에서 불안 요소가 컸어요. 회사소개서와 제품기획서로 소개하는 제품과 실제로 제작한 시제품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어요. 이대로 출시하기에는 소비자의 편의부터 안전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상당했죠. 이래서는 마케팅과 홍보가 문제가 아니라 제품을 기획하는 초기 단계부터 적극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 제품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매대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졌죠.


Q. 부산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 겸 시간강사로 5년 이상 근무하였는데 산업계로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과에서는 주로 마케팅 과목인 소비자행동론과 마케팅 리서치 등을 강의하였고, 창업지원단에서 스타트업 창업과 관련한 과목을 강의하였어요. 교양수업으로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참여해서 부담 없이 함께 사례를 공부하고, 팀프로젝트를 통해 간접체험을 하는 수업을 진행했어요. 이론 위주의 지루한 수업이 아니어서 그런지 많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임했었고, 실제 창업까지 이른 학생들도 제법 있었어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기업들의 이슈를 함께 고민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컨설턴트 관점에서 마케팅이나 브랜딩 관련한 고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이론과 사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이 커졌어요.


'강의를 통해 단순히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고만 있는 게 아닐까?'


교수가 되기 위해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은 아니었지만, 혹 교수직을 얻게 되더라도 제대로 된 교수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강의에서 이전 사례들을 다루는 이유는 학생들이 실제 문제 해결에 필요한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강의 계획과 교육과정이 수년 전에 미리 작성되기 때문에 최신 동향을 반영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개인 의견이지만 경영과 창업 쪽 분야는 변화가 더욱 거세어서 그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심지어 일부 교과서나 사례집은 10년도 더 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최신 동향을 강의에 반영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최신 동향과 관련된 케이스 스터디나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최신 논문이나 관련 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아쉽게도 국내 대학은 교수를 중심으로 한 방향 강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커졌어요. 그리고 가급적 그 일을 부산에서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Q. (주)스마트파머에서 투자팀장을 역임하였는데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였나요? 당시 발굴한 스타트업들은 어떤 곳들인가요?

창업 관련 경험이 있던 대학원 선후배들이 모여 창업한 스타트업이 (주)스마트파머 였어요. 회사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원래 사업모델은 스마트팜이었어요. 상경계 출신들이지만, 농업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야심 차게 시작했죠. 당시는 정말 이공계 지식 하나 없이 젊은 패기와 실행력으로 추진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기술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죠. 저는 학교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었고, 간접적으로 여러 사업모델을 함께 준비했어요. 당시 지금의 초기창업패키지 같은 정부지원사업도 진행하며 공들여 준비했던 사업모델은 결국 사업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회사는 자금 위기를 직면했어요.


대표와 임원들이 외부 강의 다니고 과제 용역하면서 마련한 돈으로 직원들 급여를 충당했어요. 힘들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다들 사업하겠다고 졸업도 미뤄둔 상태여서 퇴사나 이직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직원들 급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던 창업 강의와 컨설팅, 리서치 용역 사업이 입소문을 타고 찾는 고객사들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보육 사업으로 전환하게 되었어요. 부산대학교 안에 PNU-MASHUP ZONE 이라는 보육시설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학교 앞에 100평 정도의 보육 공간을 마련하며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보육 사업을 시작했어요. 저도 본격적으로 회사로 적을 옮겨 액셀러레이터 등록작업과 함께 투자업무 및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전국에서는 스마트파머가 17번째로 등록된 액셀러레이터이지만, 부산에서는 2번째일 정도로 시작이 빨랐어요. 나름 스타트업의 씨앗을 심고 키우는 농부로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청년창조발전소 꿈터+


이후 5층 규모의 ‘청년창조발전소’라는 스타트업 보육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며 유망하다고 판단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엔젤투자나 개인투자조합 결성을 통한 투자를 진행하였어요. 이때 스마트파머가 보육, 발굴하게 된 기업들은 시니어케어 플랫폼인 (주)케어닥, 건설현장 관리 서비스인 (주)무스마, 마이크로 물류 및 라스트마일 서비스를 운영하는 (주)피엘지, NFC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폰 악세사리를 제작하는 (주)슬래시비슬래시 등이 있어요. 예비창업과 시드 단계에서 보육해서 현재는 시리즈 B 정도까지 성장한 기업들이라고 볼 수 있죠.


Q. 이후 미래과학기술지주(주)에서 근무하였는데 직장을 옮기게 된 과정과 담당 업무가 궁금합니다.

당시 만났던 초기기업들은 대부분 아이디어 기반의 생활밀착형 창업이나, 소비재, 커머스 등의 아이템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기술 기반 창업기업을 간혹 만나게 되면 제가 실질적인 기술사업화 관련 경험이 없어서 적절한 지원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보육 스타트업들의 후속 투자 유치를 위해 서울에 있는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탈과 교류하며 일을 하고 있었지만, 지역에서 계속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러던 도중에 KAIST를 포함한 4대 과학기술원(KAIST, UNIST, DGIST, GIST)의 기술사업화 및 투자를 담당하는 미래과학기술지주(주)의 심사역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미래과학기술지주(주)


당시 대전시도 부산시와 마찬가지로 지방 위축 시대를 맞아 우려가 컸어요. 지역 대학은 경쟁력을 잃고,  청년들은 서울·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지역 소멸이 진행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대전시는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통해 청년층의 고용창출, 지역 정주와 경제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어요. 이후 적극적으로 초기 벤처펀드에 출자하고 여러 창업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었어요. 민간에서는 블루포인트로 대표되는 KAIST 기반의 액셀러레이터가 많은 초기기업들을 육성해 나가고, 대덕벤처파트너스와 같은 대전에 뿌리를 둔 벤처캐피탈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던 시기였어요.


미래과학기술지주(주)도 그러한 흐름에 맞춰 전문 심사역 충원을 시작하였는데, 당시 적합한 경력직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해요. 수도권 인력들을 대전으로 유입시키기가 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카이스트 출신은 아니지만 당시 투자도 여섯 건 정도 진행하였고 보고서 작성은 물론 엔젤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펀드도 조성하여 투자를 집행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셨어요.


그렇게 미래과학기술지주(주)의 심사역을 맡아 주로 KAIST와 UNIST의 기술이전 수요기업, 교원 및 석, 박사 창업기업에 대한 발굴, 투자, 사후관리 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창업팀의 TIPS 과제 공동 기획 및 추천 업무, 펀드 기획 및 조성업무도 중요업무 중 하나였죠. 이 과정에서 한국벤처투자와 대전광역시, 인공지능연구원, 휴맥스, 한국수자원공사 등으로부터 출자받아 두 개의 지방계정 펀드를 결성하였고 제가 대표펀드매니저를 맡았어요. 그 인연으로 한국수자원공사 창업혁신부 이은진 차장님이 진행하는 유튜브에 출연하여 미래과학기술 지주가 운영하는 벤처투자에 대해서도 설명하기도 했어요.


한국수자원공사 이은진 차장(좌), 미래과학기술지주 심사역 노태석(우), ⓒ한국수자원공사


근무하는 동안 매일 새로운 기술을 만나다 보니, 박사논문 쓸 때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학습을 해야 했어요. 관련 논문을 찾아보는 것은 물론 교수님들이나 박사님들 쫓아서 랩 세미나에 찾아갔어요. 그래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으면 기업의 현업실무자들, 선배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고견을 듣고자 주야를 불문하고 전국을 누볐어요.


Q. 미래과학기술지주에서 근무 당시 가장 흥미로웠던 스타트업은 어떤 곳이었나요?

당시 만났던 기술기반 스타트업 중에서는 독자적인 기술로 데이터센터의 광케이블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포인투테크놀로지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포인투테크놀로지는 2014년 창업한 반도체 팹리스 회사로서 5G, 6G 네트워크 통신, 차세대 케이블 네트워크 통신 및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제품 분야에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기존 구리선의 경우 전송거리가 1.5m를 넘지 못하고, 광케이블은 구리선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전송 거리도 길지만 5배 이상 비싼 가격이 단점이었어요. 포인투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액티브 네트워크 케이블 솔루션은 고도화된 초고속 DSP와 RF 반도체 설계기술을 기반으로 네트워크 케이블의 무게나 부피를 절반 이하로 줄였어요. 쉽게 설명하면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 케이블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전송거리는 5배로 늘고 전력소비는 광케이블 제품 대비 70%, 제조 비용도 80% 넘게 절감한 기술이에요.


현재 카이스트 창업원장인 배현민 교수님의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한 기업이었고, 당시 미래과학기술지주가 시드투자한 이후 최근까지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국내외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400억 원을 투자 유치하였어요. 미국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1위 업체인 몰렉스와의 계약으로 아마존 향 솔루션을 제공 예정이에요.


Ⓒ한경, 카이스트창업보육센터


사실, 다른 흥미로운 기술이나 스타트업들도 많지만, 굳이 포인투테크놀로지를 꼽은 이유가 있어요. 독보적인 기술력 외에도 배현민 교수님이 연쇄창업가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교수님은 박사과정 중이던 2001년 지도교수와 함께 첫 번째 스타트업 인터심볼 커뮤니케이션스를 창업하였어요. 이후 KAIST 교수 2년 차이던 2010년 테라스퀘어, 2013년 오비이랩, 2016년 포인트투테크놀로지, 2021년 배럴아이를 연이어 창업했죠. 모두가 연구자로서 연구하고 논문을 쓴 것을 바탕으로 사업화한 성과여서 의미가 크죠.


과학기술원에서 공부한 많은 석박사 학생들이 창업을 꿈꾸고, 실제로도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그 기술로 창업하고, 벤처에서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큰 문화충격을 받았어요. 카이스트의 경우, 최근 교내 창업기업을 외부 자본시장에 연결하는 등 파격적인 창업지원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구실별로 최소 1개 연구실 혹은 졸업생 창업을 권장하는 1랩 1벤처가 한창이에요. 카이스트를 보며 부산에서도 이처럼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창업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어요.


ⓒ부산시


이번 글에는 노태석 심사역이 고졸 부사관에서 KAIST를 포함한 4대 과학기술원의 기술사업화 및 투자를 담당하는 미래과학기술지주(주)의 심사역으로 근무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다음 글에는 그가 BNK벤처투자로 옮겨 지방소멸 시대를 맞아 그만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이전 10화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대신 '덕후'의 길을 선택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