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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un 13. 2023

"저희 교수님은 BTS 때문에 유명해진 게 아니에요."

내가 만난 가장 탈권위적인 스승이자 친구

18년 전, 미국 대학의 학부생이었던 나는 큰 기대없이 사회학 수업을 신청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수업들은 정원이 수십명이 안되었지만 사회학 수업의 정원은 수백이어서 수강신청이 비교적 수월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수업에 들어가니 정말 많은 학생들이 꽤나 넓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이 엄청난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Samuel Richards 교수님이었다. 첫 수업에서 사무엘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교수라는 직책은 빼고 사무엘을 줄인 샘이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그래서 실제로 나를 포함한 모든 수강생들이 샘이라고 불렀다.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샘의 수업은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나에게도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였다. 샘은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질문을 던지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격렬하게 논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샘의 질문을 듣다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샘의 수업은 제 시간에 끝나기 어려울 정도로 난상토론으로 가득했고, 매번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발견과 배움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샘의 수업은 인기가 많아서 학점 관리가 필요한 학생들은 수강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나는 A학점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샘의 수업에서 얻은 것은 학점보다 더 큰 가치가 있었다. 샘은 교수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았을 뿐 아니라 자신을 '멍청이' 또는 '바보'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러한 탈권위주의적 행동은 아마도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기보다는 학생 개개인이 우리 사회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도록 돕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샘은 자신의 목표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재고하게 하고, 삶에서 간과되는 것들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샘은 수업 시간에 미국이 무조건 우월하고 세계 1위라는 미국인들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질문을 자주 하였고 이를 증명하는 팩트들도 거침없이 나열하였다. 그 역시 미국인이었지만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것은 영어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미국인들이 영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지금 미국인 쓰는 영어의 발음은 영국에서 쓰는 영어와 차이가 있죠? 그건 영국의 한 지역에서 방언을 구사하던 영국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지금의 미국식 발음이 된 거예요. 그런데 한 국가의 방언이 지금은 전세계 공통어가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이 얘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완벽한 미국식 영어 발음을 소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그런데 그의 질문이 나에게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외국인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지방 사투리 제대로 구사하지 못 하는 게 큰 죄나 실례는 아니잖아? 메시지만 제대로 전달하면 되지."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그는 종종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 클립을 보여주며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이슈를 풍자하고 다시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코미디언이 얼마나 영리한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코미디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덕분에  나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입문하게 되었고 당시 크리스락의 스탠드업 코미디 DVD도 구매하였다.


그런데 18년 만에 샘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샘이 서울에 온다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곧바로 외부 강연장에 그를 만나러 갔다. 이번 생에 다시 보기 힘들 줄 알았는데, 샘과 재회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했다.


지난 18년 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샘은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유명 사회학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강의 중 BTS와 한국 문화를 극찬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한국 팬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긍정적인 평가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샘은 18년 전에도 이미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교수님 중 한 명이었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교수님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국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조금은 불편하고 민감한 발언과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샘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교수 101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올해 샘과 재회한 것은 아마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멋진 스승이자 친구이다. 샘이 올해 교단에 선지 39년째이지만, 여전히 젊고 열정적이다. 앞으로도 샘이 한국과 미국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길 바란다. 그러면 나처럼 자신의 관점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관점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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