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을 퇴사시키는 과정은 남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오래전 스타트업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구조조정을 주도하게 되었다. 외국계 회계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자금, 신제품, 내부 혁신, 브랜드, 오픈이노베이션, 신사업, 마케팅, PM, CFO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인사나 노무 업무는 전문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입사 후 회사의 재무 상태를 확인하니 참혹했다. 이대로 가다간 결말이 눈에 선했다. 아직 전 직원의 이름을 외우기도 전이었지만 왠지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대표님, 지금 이대로 가면 올해 가을이 고비입니다. 지금 당장 비용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창업자와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결국 그의 동의를 얻어 스타트업의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구조조정은 결코 내 전문 분야가 아니며 앞으로도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내가 그 짐을 짊어지기로 했을 뿐이다. 조직의 1/3에 달하는 구성원들과 이별하면서 몇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구조조정에 직면한 구성원들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1. 말이 없는 사람:
첫 번째가 구조조정 대상임을 알렸는데 크게 동요가 없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은 실적이나 기여도의 측면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였다. 대부분 경력이 7~8년 이상으로 팀장 이상의 임원급이었다. 대부분 급여가 비교적 높은 수준이어서 평균 급여를 낮추는 데 영향이 있다. 회사가 사정이 재정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접적으로 공유하지 않아도 오랜 경력을 통해 쌓은 눈칫밥으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개별 실적과 회사의 전망을 설명하면 바로 납득한다. 이곳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 취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분들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직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가장 신속하게 협의가 끝났다.
2. 분노하는 사람:
두 번째는 구조조정 대상임을 통보받았는데 극도로 흥분하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은 실적이나 기여도는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만 평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기여도나 실력은 같이 일을 해본 동료들의 평가로만 알 수 있었다. 경력은 3년 차 이상이지만 팀장 역할은 대부분 해보지 않았다. 회사의 재무 상태를 공유받으면 무척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업무적인 신뢰나 인정은 받지 못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사람은 좋은데'라는 부연설명이 붙는 동료들이었다.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중하게 접근하고 원만한 대화를 통해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조건으로 종결하려는 노력이 가장 크게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인가?'라는 질문의 늪에 빠져 괴로워 하기도 한다. 어떤 분은 내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면서 당신은 왜 이 회사에 근무하고 있나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답했다.
"구조조정이 완료되고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저도 퇴사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더 이상 나를 사측을 대변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로 받아들였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3. 액수를 묻는 사람:
마지막으로 구조조정 대상자라는 것을 알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금액을 물어보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은 실적이나 기여도를 측정이 가능한 정도의 업무를 최근에 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도 그들의 퇴사에 큰 동요가 없었다. 경력과 무관하게 그저 묻어가려고 한 흔적이 보였다. 회사의 재무 상태를 알려주어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한때 몸담았던 회사의 존폐보다 마지막 월급 지급일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들 중 일부는 원하는 금액의 위로금을 받기 전까지 인수인계를 늦추거나 기기 반납을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그들의 기여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인수인계가 중요하지 않았다. 세 가지 유형 중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요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을 해봤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시각에서 구분하였기에 이외의 다른 유형도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성공적인 구조조정은 없다. 구조조정 대상자라 하더라도 전부 채용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입사한 구성원들이다. 구조조정 자체가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시작한 이상 꼭 완수해야 하는 책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구조조정을 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것도 아니고 엄청난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동네방네 떠들 일도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한 것이다.
구조조정은 잠재적인 법적 문제도 있지만 한때 동료라고 불렀던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죄책감, 불안, 심지어 공황장애까지 겪을 수 있다. 나의 경우, 회사에서 결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일시적인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구조조정은 그 대상이 최소한의 존중을 받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창업자나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회사 문을 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 그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회사도 생존을 위해 전념해야 한다.
잊지 말자. 직원을 퇴사시키는 과정은 남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존중받지 못하고 떠나는 동료를 보며 기뻐할 사람은 없다. 언제든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 마무리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