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의 스타트업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창업자의 요청으로 신설 부서의 신규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채용사이트에 접속했다. 채용공고를 올리던 중 다른 팀의 채용공고가 채용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확인하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인사팀 담당자에게 물었다.
“이 팀은 공석이 없다고 들었는데 왜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죠?"
인사담당자는 당황한 듯 대답을 머뭇거렸다. 다른 직원들이 있는 곳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무실 밖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이 포지션을 신규 채용하기로 대표이사와 협의가 된 건가요?"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는데 들은 답변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었다.
“아니요, 현재 채용 계획은 없어요. 그냥 이런 포지션에 어떤 분들이 지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공고를 올려봤어요.”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들은 답변 중 가장 형편없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채용 담당자의 계정으로 어지간한 채용사이트에 접속하면 입사 혹은 이직 의사가 있는 잠재 후보자들을 모두 검색해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희가 채용하지 않을 포지션을 마치 채용할 것처럼 공고를 올리는 것은 구직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예요."
“이 공고를 보고 지원하는 분들은 대부분 입사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가지고 진심으로 지원하는 분들일 거예요."
“그리고 같은 채용공고가 장기간 게시되어 있으면 지원자들은 지원의 동기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의심부터 하게 돼요. 이 포지션 또는 이 회사는 비전이 없거나 근무조건이 매력적이지 않아 퇴사율이 높거나 지원자가 적은 것은 아닐지 하고요.”
나 역시 구직 활동을 할 때 자주 보이는 채용공고는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조심스럽다. 자주 비는 자리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 선배들의 말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용계획도 없는 공고를 장기간 게시해 놓았으니 내 입장에서는 자살골도 이런 자살골이 없었다.
채용하는 건 기업의 결정 사항이자 고유 권한이니 잘못된 것이 없다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당신이 인사담당자인데 대표이사 인터뷰까지 최종 합격한 인재가 출근일 며칠 앞두고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었다. 당신 기분은 어떨 것 같나? 분명히 애가 타고 화가 날 것이다.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취업준비생 혹은 이직희망자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이 스타트업의 대표라고 해보자. 기업의 현금 소진 속도가 급격히 빨라져 급하게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런데 만나기로 약속한 투자자가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는다. 분명 메시지는 읽거나 확인한 것으로 표시가 되는데 회신이 없다. 당신은 십중팔구 투자자의 태도나 매너를 비난할 것이다. 아마 차갑고 냉정한 투자자가 갑질한다고 말이다.
당신의 기업에 지원하는 사람 역시 같은 심정일 것이다. 채용계획이 없거나 월급을 줄 형편이 안 되면 애초에 채용공고를 올려서는 안 된다. 스타트업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그 말은 스타트업은 모든 법과 규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3평 남짓한 편의점 사장님도 지키는 매너를 시장을 혁신하고 글로벌 진출을 외치는 스타트업의 대표 혹은 채용 담당자가 지키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윤리경영의 기본은 어렵지 않다.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하면 최소한의 윤리 기준은 충족시킬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은 큰 고민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운영하는 것이 유연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그 착각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