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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y 16. 2020

"지금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신입사원, 퇴사를 결심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회사를 다닌 지 15개월쯤 되었을 쯤이었다.

아직 일이 나의 적성과 맞는지 고민이 깊었던 시기이다. 원장을 담당하며 매달 반복되는 사이클이 익숙해지고 회사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가슴 한편이 허한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문구가 있었다.


"지금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출처: 노트폴리오, 박진현


가슴이 뛴다고?


그렇고 보니 결혼 7년 차인 배우자가 종종 내게 묻는다.


"아직도 나를 보면 설레고 가슴이 뛰니?"


"흠.. 내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와이프를 보고 가슴이 뛴다면 그때는 '부부의 세계'가 더 이상 TV 드라마가 아닐 거야. 아마 변호사와 상담이 필요하겠지. 그게 아니라면 심장에 이상 있는지 전문의 상담을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머리로 답해야 하는 문제를 필터 없이 가슴으로 답해 계획에 없던 간헐적 단식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는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었지?


회계전표에 대변과 차변을 반대로 기입한 것을 월말 결산에 발견했을 때 가슴이 뛰었다. 지난번 전사 프로젝트 담당 시 참여를 거부하던 분을 자리에 찾아갔는데 무작정 화를 내셔서 가슴이 뛰었다. 음주에 대한 조예가 깊으신 부장님이 'OO 씨, 저녁 약속 있니?'라고 물을 때 가슴이 뛰었다.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대 들릴까 봐 겁나"


가왕 조용필; 출처: 트위터 @pilysr1                      Следване


가왕 조용필의 명곡 '바운스'의 가사가 새삼 현실이 되던 순간들이었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인해 가슴이 뛴 적은 있었지만 일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으로 가슴이 뛴 적은 적었다. 그런 고민들이 1년 간 한 겹 한 겹 쌓여 결국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것이 아닌 다른 업무를 하고 싶어 중고신입으로 입사할 각오로 퇴사를 결했다. 그리고 부장님 2차례 면담을 하였다. 부장님은 결정을 되돌리기를 원했지만 이미 마음은 콩밭을 넘어 콩국수집 납품한 상태여서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부장님은 최종적으로 외국인 CFO에게 보고를 하겠다고 하셨다.


그 후, 내 자리로 전화가 왔다. 단축번호를 보니 회사 내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수화기를 들자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OO, can you come to my room?"


외국인 임원이 방에 오라고 한다. 이 놈의 외국계 까닥하면 자기 방으로 초대한다. 왜 우리는 중간지점에서 만날 수 없는걸까? 내 마지막 자존감을 지키고자 단답형으로 답했다.


"Sir, I will be right there."


수화기를 내려놓고 옆의 동료직원에게 물었다.


"단축번호가 OOO인데 누구인지 아세요?"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녀는 말했다.


"CFO잖아요. 그런데 누군지 모르면서 간다고 한 거예요?"


"그거야 뭐 CEO, CFO, CMO, CB MASS, CNN 등 각종 C 타이틀 중 하나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동료직원에게 아재개그를 시전하고 쿨하게 뒤돌아섰다. 뒤에서 휴대폰을 키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카톡차단을 하나보다. 또 한 명의 회사 지인을 잃은 체 우리 부서의 끝판왕 CFO의 방으로 향했다. 


출처: Dennis Larsen from Pixabay


동방예의지국의 군필자답게 가볍게 노크를 했다.


"Yes, come in."


들어오란다.

'나 왜 불렀니? 내가 그리 한가해 보이니? 지금도 남이지만 앞으로 더 철저히 남이 될 사이인데'를 격식을 갖춰 문의했다.


"Hope I am not interrupting you. I heard you wanted to see me."


그는 나에게 들어와서 앉으라고 말하더니 급한 성격을 숨기지 못하고 바로 본론으로 건너뛰었다.


"Earlier, I was informed that you wanted leave. I thought you were doing pretty well. Why?"


'왜 퇴사하고 싶냐고? 내 인생 내 맘대로 살겠다는데 왜?' 이런 내 속마음을 또다시 직장인 코드로 변환하여 답하였다.


"It has been a year in finance and I would like to put myself for bigger challenges that would inspire me and keep me motivated."


더 큰 도전을 원한다는 내 대답 이후 CFO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난번 프로젝트를 조기에 완료한 것은 인상적이었다며 그런 전사 프로젝트 운영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쪽으로 브로셔를 내밀었다. 치 아파트 견본 하우스에 방문 시 실장님들이 건네는 컬러풀한 브로셔였다.


출처: Pete Linforth from Pixabay


"Since you wanted something more challenging, here's my proposal for you. It is called 'Continuous Improvement' project."


CFO는 영화 '대부'에 나오는 주인공 마냥 내게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했다. 사실 그가 제안한 글로벌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가 거절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작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다음이었다.


"If you accept it, in one month, you will fly to Switzerland in business class to attend the training for project managers from all around the world. And, there's another overseas training in Bangkok in 6 months. Last but not least, you will be promoted immediately."


제안을 수락하게 되면 1달 뒤 스위스 본사로 날아가 각 국의 프로젝트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참여하게 되고 6개월 뒤에는 방콕에서 두 번째 교육을 받게 된다고 한다. 거기다 스위스는 비즈니스석으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출처: Ashish Bhave from Pixabay


마지막으로 그동안 사원이어서 '호박씨' '오란씨'처럼 'OO 씨'로 불렸는데 임으로 조기 승진시켜준다고 했다. CFO는 주말 동안 생각해보고 답을 달라고 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 짧은 커리어를 전부 리셋하고 더 많은 리스크를 안고 새로운 도전에 임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인정해주는 기존의 조직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이후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재미없는 직장얘기지만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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