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신입사원 시절, CFO의 권한으로 만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총괄 담당자가 되었다. 당시 내가 진행 한 프로젝트는 'Continuous Improvement'라는 생산성 및 효율성을 최적화하는 경영혁신 방법론이었다. 원래는 일본 완성차 생산공장에서 품질관리 및 효율 극대화를 위해 이용되었지만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생산현장은 물론 사무직에도 적용하였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시도하고 기록하고 달성하고 마지막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BMW 등 타 글로벌 기업들도 도입을 하였다.
'휴우, 다행이다. 나만 하는 게 아니어서..'
우선 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일을 수치로 측정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당시 프로젝트 팀원들 혹은 부장님들을 모시고 현재 하는 일을 모두 측정 가능한 수치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역시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호응해주셨다.
"여기가 공장도 아니고 대부분 서류 작업인데 무슨 측정이야?"
"이게 말이 되니? 이렇게 한다고 정말 뭐가 바뀌는 거야?"
"OO씨, 아니 이제 OO주임으로 불러야겠네.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이거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 응?"
본사에서 교육을 받을 때 분명 측정하자고 하면 반발이 있을 것이니 이에 대해 미리 대비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극도로 차분함을 유지하고 답을 드렸다.
"전 이 프로젝트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각 부서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지 진단을 할 수 있는 기회이고 전사 공통의 목표를 위해 각 구성원들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짧고 부족한 경력이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원하는 답을 주지는 못하였지만 이제 막 2년 차가 된 직원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부서장은 없었다. 그리고 전부 CFO의 산하 부서였기에 CFO가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만약 CFO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시작조차 못하였을 것이다. 물론 비협조적인 프로젝트 팀원에 대해 CFO에게 보고하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 프로젝트 팀원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얻을 수 없고 결국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비록 짧은 경력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신 내부 반발로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내 나름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예로, 점심시간에 회사 주위를 미친 듯이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에는 걷는 도중 점심시간이 모두 끝나버려 버스를 타고 복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심신의 평화를 찾으면 다시 자리로 돌아와 게임페이스(결의에 가득 찬 진지한 운동선수들의 얼굴)를 하고 업무에 집중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나약해지거나 흔들리면 나 스스로 자멸할 수 있다고 생각해 스트레스 누적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런 와중에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고 교육자료로 잘 활용하면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고민할 것도 없이 교육자료의 명칭을 아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으로 정했다.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수치화는 왜 필요한가?'
교육자료는 가장 먼저 우리 자신에게 묻는 질문으로 시작을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부유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가? 부유하면 얼마나 부유하고 가난하다면 얼마나 가난한가?'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겸손이 곧 미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부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열이면 열 대부분 가난한 측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질문들에 차례대로 답해보자.
'당신의 집 냉장고에는 음식이 있나요?'
'당신은 입을 옷이 있나요?'
'당신은 거주하는 곳이 있나요?'
'당신은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나요?'
그리고 당신의 답이 모두 '예'라면 대답했다면,
통계적으로, 당신은 이미 전 세계인의 75%보다 더 부유한다.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그럼 질의응답을 추가로 몇 가지 더 해보자.
'당신의 은행 통장에 잔금이 있는가?'
'당신의 지갑에 돈 혹은 사용 가능한 카드가 있는가?'
이번에도 당신의 답이 모두 '예'라면 대답했다면,
통계적으로, 당신은 이미 전 세계인의 92%보다 더 부유하다.
그럼 다시 질문하겠다.
'당신은 과연 얼마나 부유 혹은 얼마나 가난한가?'
대부분 자신은 부유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얼마나 부유한 측에 속하는지 알 수 있는 교육자료이다. 이처럼 숫자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업무를 수치화하고 측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자료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는지 부장님들은 물론 그 부서의 팀원들도 프로젝트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 자료를 본 본사 교육담당자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진행 예정인 타 해외법인들에도 공유해도 괜찮을지 문의를 해왔고 난 흔쾌히 동의했다.
그 후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방식 혹은 낯선 방법론에 대해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이 교육자료를 생각하며 강요가 아닌 설득을 할 수 있도록 내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또 고쳐먹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