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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Feb 16. 2022

'국민이 대통령 후보의 한자 성까지 알아야 되나요?'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쓰는 것은 문화인으로서의 긍지를 버리는 것인가?"

뉴스를 보다 보면, 정치인 이름을 줄여서 표기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자막으로 이름 석 자를 다 넣을 경우 공간이 부족해서인 듯하다.


한자가 섞인 대선 관련 기사들


그런데 정치인 이름을 줄여서 표기할 때 꼭 한자로 해야 하는 걸까?


기사를 발행하는 입장에서는 발언 주체와 내용을 함께 전달할 때 성을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 가독성이 더 좋다고 한다. 한자가 역사가 길고 우리나라의 문화 깊숙이 스며든 문자임은 맞지만 대통령의 후보의 한자 성까지 꼭 우리가 알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혹자는 중국인보다 한자를 더 많이 알아야만 신문을 볼 수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종이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창제한 지 570년이 훌쩍 넘었다. 한글을 창제하여 민중들에게 문자를 알게 하려는 세종의 애민 정신이 크게 작용하였다. 세종의 한글 창제 서문에 따르면, 백성들이 배우기도 어렵고 쓰기도 힘든 한자로는 제 뜻을 펴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문자인 한글을 만들었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세종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한글을 직접 만들었다. 그래서 한글은 사람의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소리글자이자 자질문자여서 하나하나의 글자가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인 한자에 비해서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가 쉽다. 한 사람이 모방 없이 창작한 문자가 널리 쓰이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 한글이 유일하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세종의 업적을 기리며 문맹률 감소에 기여한 단체에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한글은 세계 모든 문자에 대한 옥스퍼드 대학의 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과학 전문지 ‘디스커버리’는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로 극찬했다.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출처=외교부


그리고 지금의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 선생과 국어연구학회 회원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고문과 옥살이를 감수했고, 끝내 1947년 우리말큰사전을 편찬했다. 


한글의 의미는 '으뜸이 되는 큰글', '오진 하나뿐인 큰글'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인의 글자'라는 뜻이 가장 와닿는다.


그렇다. 한글은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글자인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시가(詩歌)와 각종 경서가 한글로 번역되어 일반에 보급됐는데, 여성층과 일반 서민들의 호응도가 높았다. 나라에서는 훈민정음을 보급하기 위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하여 불경, 농서, 윤리서, 병서 등을 번역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창제된 이후 꾸준히 기득권층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양반 관료들은 한글이 농민에게 보급되어 한글로 무장한 농민이 관료로 진출하고, 한자를 기반으로 한 성리학 중심의 신분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였다. 이 점이 한글 창제를 반대한 핵심 이유였다. 그중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고 한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한자를 버리고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문화인으로서의 긍지를 버리는 일일뿐만 아니라 후환(어떤 일로 말미암아 뒷날 생기는 걱정과 근심)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


조선의 선비들 역시 한글을 무시하고 홀대하였다. 부녀자들 사이에서 널리 쓰여 '암클'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언서, 반절, 아랫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암클'이라는 호칭은 한글은 천한 여인네들이나 쓰는 천한 글이라며 한문을 중시했던 양반들이 비하하여 부른 것이다. 조선의 10대 임금인 연산군은 자신을 비난하는 한글로 쓰인 투서가 돌자 한글 사용 자체를 탄압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어를 국어라 부르고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글은 1894년이 되어서야 공식 문자로 선포되었다. 이제 우리는 한글을 그 누구의 간섭과 방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문맹률은 1% 이하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덕분에 한국의 산업과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정치인의 성을 한글로 쓴다고 해서 기사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바뀌지 않는다. 반대로 정치인의 성을 한자로 쓴다고 해서 기사의 가독성이 더 높아진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없다. 앞으로 '한국인을 위한 글자' 한글을 정치기사에서도 더욱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한글이 곧 대한민국이고, 우리의 역사이자 미래이다.


한자 대신 한글을 적용한 대선 관련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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