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 쉬지 않고 촬영을 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의 일정을 잡기도 하고,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의 촬영에 6천 컷이나 되는 작업을 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힘 조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법 몸 상태에 신경을 쓰면서 진행했지만, 물리적 한계가 느껴지는 후반부에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무언가 놓칠 수도 있겠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촬영장은 행복했다. 내가 만드는 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거센 바람 같던 촬영들이 마무리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죽음과 같은 깊은 상실감과 마주쳤다. 현장에서 느꼈던 모든 순간이 나의 것이 아닌 한 순간의 메아리처럼, 펑-하고 사라진 것이다.
때때로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 걸까, 하고.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전화기를 수도 없이 만지작 거리면서 몇몇 사람에게 연락을 했지만, 주말을 앞둔 이 시간에 갑자기 나와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문득 세상에서 혼자가 된 것 같았다. 긴 긴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한 발자국 벗어난 현실엔 여전히 말 수가 적은 열일곱 살의 내가 있었다.
무언가 보상받고 싶었던 기분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잘 해냈다는 세리머니라도 함께 해 줄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평소라면 음악을 크게 틀고 소리를 한껏 지르며 돌아오던 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난 주말엔 많은 술을 마셨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됐다. 기억도 물론 제대로 나지 않고, 바로 걸을 수도 없었다. 피지 않던 담배도 잔뜩 얻어 피고 오늘이 지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혔다.
엉망이 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숙취는 이길 수 없었다. 다음날 하루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무모한 짓은 보통 이런 부작용을 동반한다. 그래도 마음은 좀 풀렸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웃고 떠들고 마시고 피워댄 덕분에 당분간은 엉망이 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밤이 오는 게 제법 가까워졌다. 머지않아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겨울 냄새도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