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돌아온 이후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헤매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작년의 방문은 주로 일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사실상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온전히 개인적인 일로는 3년 만의 일이었다. 3년 만의 휴가였다. 팬데믹 이전엔 아무런 저항 없이 방문했었던 터라 익숙해져 있던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닮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바람과 빛에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날 수 있었다는 걸 한동안 잊고 있었다. 맑은 날이면 한 없이 투명한 하늘에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선명했다.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상쾌하고 달콤한 공기가 온몸을 가득 채웠다.
문득 바라본 공공건물이나 고층 빌딩들의 스케일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고, 거리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외국인은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늘어서(나도 포함이지만) 도심 곳곳에는 다양한 외국어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거리와 열차에선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최근 서울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하라주쿠 역이나 시모키타자와 같은 유명한 역사가 큰 공사를 마치고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시모키타자와는 이전의 모습이 완전히 사려져서 다른 동네에 내린 줄만 알았을 정도였다. 시부야는 여전히 공사 중인 곳이 많았지만, 메가시티의 느낌이 더 단단해져 있었다. 새로 생긴 환승 통행로 중에 스크램블 횡단보도가 보이는 스팟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멈춰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 사이에 현금 위주의 결제 방식은 비대면 형식으로 상당히 진화해 있었고, 편의점은 예전의 버스 요금통 같은 형태의 현금 자동 계산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복잡한 열차와 버스에서의 IC 카드 사용도 편리하게 통합이 되었고, 스마트폰이나 워치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음식점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예전에 비하면 어느 정도 좋아졌지만, 더 괜찮은 가게들이 생기면 좋을 텐데 하고 마음 한구석은 아쉬웠다. (15년 전 즈음 처음 일본 여행을 갔을 때 한국 음식점을 우연히 보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무척이나 허름하고 낡은, 스테인리스 원형 테이블과 간이 의자를 가져다 두고는 한국 음식점이라고 영업하고 있었다. 심지어 요코하마의 제법 중심지였다. 외부인의 눈에 비치는 한국의 수준은 이 정도였구나 싶어서 꽤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방송에선 한국에 관련된 소식과 에피소드들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오늘 한국 요리 먹으러 갈까?”라는 대사라든가 심지어 오늘의 운세 같은 것에서도 [오늘은 한국 요리를 먹으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등장하곤 했다.
김포 국제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밤 열 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빠져나오자 익숙한 공원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문득 올려다본 먼 곳의 시야는 불투명했다. 숨을 쉬는 데에 얼마간 힘을 더 써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가항력적 비극에 서글퍼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했던 일들은 줄곧 한국의 특집과 연결된 일본 매체의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예정된 일들도 대부분 그런 일들이 많다.
함께 일하는 일본인 관계자들은 대부분 한국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 집과 바꿔 살자고 하는 편집자도 있을 정도다. 때때로 얄미워하기도 하고 여러 정치적 복잡한 이슈도 이어져 있지만, 적어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나를 지지해 준다.
언젠가 현장에서 국내 관계자가 했던 말이 있다. “일본 일을 할 때는 너무 다 맞춰주시는 거 아니에요?”라고. 딱히 그것이 일본 일이라서 그랬던 적은 없었다. 나는 상냥한 사람들에게 그대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자연스럽게 행동이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투명한 하늘 아래를 걷고 싶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스스로를 증명하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