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잠이 깨어 거실에 나와보니 탁상시계가 멈춰있었다. 특별히 의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손목시계와 휴대전화를 제외하고는 집 안에 있는 유일한 시계였다.
생일날 선물 받았던 것이었다. 집안 내에서 시계를 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한동안은 그저 장식품처럼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눈길을 돌려 시간을 확인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시간을 보게 되었고, 차츰 시계를 보는 횟수가 늘어갔다. 최근엔 앉은 방향에서 잘 보이도록 주변의 자잘한 것들을 치워두고 가장 보기 편한 각도로 돌려두기까지 했다. 새삼스럽게도 이렇게 시간을 볼 수 있는 건 제법 편한 일이었구나 생각했던 다음날 시계는 시든 꽃처럼 멈춰 있었다.
물론 건전지를 교체하면 지난밤처럼 시계는 다시 움직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바늘은 멈춰선 채 4시 23분을 가리키고 있다.) 왠지 쇠락한 왕국을 떠올리게 했다. 끝이 어딜지도 모르는 번영과 탐욕이 맞물려 어느 날 문득 거품처럼 터져버린 것이다. 왕은 백성들에게 끌어내려져 단두대에 무릎을 꿇는다. 부패한 관료들은 산 채로 불에 태워지거나 가축의 먹이가 된다. 혼란한 틈을 타 도시는 약탈이 빈번해지고 불길에 휩싸인다. 영광이 있었던 날들은 신기루처럼 지워져 간다. 남은 것은 악취를 풍기는 잿더미와 무질서의 정적뿐이었다.
일단 건전지를 갈아 끼기로 한다. 딸깍. 시간을 미래로 돌려 2023년 7월 9일 오후 8시 42분이 되었다. 도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전의 혼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도 산업화가 지나간 거리에는 평화로운 표정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곳엔 구원이 있으리라.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