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마음이 정리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삶의 불운한 순간은 종종 찾아오는데, 그것을 형태로 인식하고 대처하는 일은 처음이 아니더라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실패에는 제법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늘 그 터널을 지나는 과정이다. 그것에만 몰두해서도 안 된다. 건강한 몸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다.
제법 한가했던 일정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갑작스레 빽빽하게 채워지고 있다.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다 보니 수면량이 급격히 줄었다. 피로가 찾아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비가 내린다. 장마는 사라지고 우기가 생겨났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보던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이렇게 가까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왠지 수억 광년 떨어진 다른 행성의 이야기처럼 들려오기만 했다.
뉴스에선 지난해 큰 피해를 보았던 곳 중에 이런저런 형태의 차수벽을 설치했다며 의기양양하게 인터뷰하고 있었다. 거대 자본의 방호벽 같은 것이다. 차수벽이라니 이런 단어도 지난해 처음 들었다.
얼마 전 인류의 지하수 사용으로 인해 자전축이 몇 센티미터인가 움직이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논문에 관한 기사를 봤다. 1993년부터 2010년까지의 집계에 따르면 수영장 약 8억 6천만 개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라고 한다. 고작 6개의 레인이 있는 25미터 풀을 다니는 나로선 짐작도 되지 않는 양이다.
하지만 자전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4만 년 정도를 주기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4만 년, 8억 6천만 개의 수영장 쯤은 가볍게 뛰어넘는 아득히 먼 미래이자 과거다. 내가 있었던 흔적도 조짐도 상상할 수 없는 손에 닿지 않는 심연 같은 시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보면 지금의 문제 같은 것들은 작은 먼지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의 세계는 그런대로 복잡해서, 당장 넘겨야 할 마감이라든가 여전히 복잡한 일본의 세금 문제라든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 해 나가야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언젠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지만, 조금은 더 즐겁게 해 나가고 싶다. 사랑했던 흔적만큼은 라디오 전파처럼 영원히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으면 좋겠다.